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형사재판 성공보수도 억울, 변호사비는 더 억울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법원은 형사재판에서 변호사의 성공보수는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라 무효”라고 판결했다.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되는 것은 뜻하지 않게 찾아올 수 있다. 이럴 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몇 가지 법률 상식을 꼭 기억하자. 억울하게 옥살이를 할지도 모르는데 재산까지 날리지는 말자.

#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생활과 윤리’ 모의고사입니다. 다음에 묘사된 계약 가운데 부도덕한 것을 모두 고르세요. 단, 의견 대립이 있으면 대법원 판례를 따릅니다.

⑴ 직장인 김철수씨는 건강검진에서 대장암이 발견됐다. 청천벽력이었다.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생이고, 부인은 직장을 그만둔 지 10년이 넘었다. 혹시 자신이 잘못되면 남은 식구들은 전 재산인 아파트를 팔아 당분간 생활을 해야 했다. 대장암 수술 전문이라는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의사가 말했다. “죽지 않고 마취에서 깨어날 경우 3000만원, 3년 이상 생존하면 5000만원, 10년 이상 생존하면 1억원입니다. 성공보수예요.”

⑵ 회사원 이영수씨는 파업 중인 동료들을 지지했다가 업무방해 방조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들은 아직 중학생이고, 부인은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생계를 돕고 있었다. 혹시 자신이 잘못되면 2000만원 남짓인 적금을 깨서 당분간 생활을 해야 했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변호를 맡기기로 했다. 변호사가 말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3000만원, 집행유예를 받으면 5000만원, 무죄를 받으면 1억원입니다. 성공보수예요.”

⑶ 자영업자 박민수씨는 자신의 딸이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신랑감을 찾았다는 말을 부인에게 들었다. 서른을 넘겨 마음이 조급했는데 한시름 덜었다 싶었다. 결혼정보업체가 뭐하는 곳인지 잘 몰랐는데, 아무튼 좋은 짝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날짜까지 잡으니 업체에서 고지서가 날아왔다. “성공보수 청구입니다. 시댁으로 보낼 예단의 10%를 입금하세요. 참고로 요새 예단 수준이 많이들 내려갔지만 기본은 하시는 게 좋습니다.”

정답은 무엇일까. ⑴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지만 만약 있다면 의사는 멱살을 잡힐 것이다. 부도덕하다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⑶은 현실에서 일어나지만 쉬쉬하는 일이다. 달라는 쪽도 주는 쪽도 어디에 말을 못하고, 안 한다. 부도덕임을 방증한다. ⑵는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떳떳하게 이뤄져온 일이다. 세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 한국에서만 통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지난 7월 23일 “변호사가 형사재판에서 성공보수를 요구하고 받는 것은 부도덕을 넘어 부당하며, 법적으로 무효”라고 선언했다. 수능 준비생은 여기까지만 읽고 다시 공부에 전념하면 되겠다. 이제부터는 생활인인 어른들을 위한 실전 생존 가이드다.

형사재판을 받는 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 형사법정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어려서부터 문제아였거나 빈둥거리며 인생을 허비한 사람들이 아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가장의 역할을 해왔고, 명문대를 졸업해 유능한 회사원으로 인정받던 사람들이다.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되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안개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얼마 전 형사재판의 변호사 선택 방법을 바꿔놓았다. 모르면 당황하고, 당황하면 오판한다. 재판을 받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뒤바뀐다.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 법률은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전문가를 찾는 것은 나의 일이다. 모르면 평생 후회할 형사재판의 최신 정보를 공개한다. 대형 로펌 변호사, 중소로펌 변호사, 국립대학 형사법 교수, 전·현직 대법관, 현직 특수부 검사를 취재한 초특급 노하우다.

경향신문

성공보수 요구하는 계약서,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권고양식으로 만든 형사사건 수임약정서 양식 성공보수 부분. 위의 빈 칸에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이 적힌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노하우 1 이미 계약서에 서명을 했거나 성공보수를 지급한 경우에도 돌려받아라.

성공보수 계약이 무효인 것은 7월 23일 또는 24일부터다. 근대 사법을 뒤흔든 역사적인 대법원 판결이 애매한 결과를 낳은 것은 언론 보도와 관계가 있다. 대법원 판결은 7월 23일 있었지만 기자단의 결정으로 다음날인 24일 낮 12시부터 나왔고, 심지어 7월 24일에 선고했다고 보도한 경우도 있다. 대법원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어보자. “민법 103조가 정한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라서 무효라는 판결이다. 그러면서 과거의 계약은 원칙적으로 유효로 보고, 판결이 알려져 시민들에게 인식이 생기면서는 무효인 것으로 했다. 하지만 기자단이 보도를 다음날로 잡아놨다. 당일 보도를 거듭해서 요청했다. 하지만 기자단 사정을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성공보수가 언제부터 무효인지가 애매하게 됐다. 다시 재판을 해봐야 안다.”

2015년 7월 24일 낮 12시부터는 확실히 무효다. 계약서에 뭐라고 돼 있든 변호사에게 성공보수를 주지 않아도 된다. 대법원 판결 이전 계약이라면 무효는 아니다. 서초동 중소 로펌의 변호사들 얘기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 아직까지는 성공보수를 돌려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변호사들끼리 하나둘 찾아올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대법원 판결 이전에 지급된 경우에도 돌려달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법률상으로는 안 줘도 되지만 사무실에 와서 누워버리면 어떡하냐.” 명색이 변호사들이 의뢰인의 행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대법원이 민법 103조의 반사회적인 법률행위로 봤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예외적으로 장래효만 인정했지만, 103조는 원칙적으로 소급효가 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봐도 어제까지는 ‘사회적’이던 성공보수가 내일부터 ‘반사회적’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103조라면서 왜 소급효를 막았느냐? 이런 법리는 처음 본다. 어쨌든 103조 위반인 이상, 판결문에 적힌 소급효가 어떻고 장래효가 어떻다면서 의뢰인을 설득하기는 힘들게 됐다.” 경력 15년차 중소 로펌 변호사 설명이다. 그래서 많은 변호사들이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반사회적 계약을 맺어왔다고 한다. 판결문을 집에 애들한테 보여주지도 못하겠다.” 현재 판결문으로는 소급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7월 24일 이전의 성공보수까지 무효는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해온 대로 과다한 경우에는 돌려받을 수 있다. 현재 하급심 판결들을 보면 수천만원까지도 인정된다. 다만 과다의 기준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일반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다.

노하우 2 사정이 급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변호사가 달라는 대로 주지는 마라.

이제 형사사건에서 ‘착수금+성공보수’ 계약은 사라졌다. 앞으로는 사건 하나에 얼마라고 정하는 통계약이나, 일한 시간에 비용을 곱하는 ‘타임차지’로 간다. 변호사 시장은 평평하지가 않다. 신문에 이름이 나오는 변호사들을 선임하려면 나는 ‘을’이고, 사무실 비용 내기에도 급급한 변호사를 상대하면 내가 ‘갑’이다. 실감나는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ㄱ변호사는 2007년 대기업 총수의 형사사건에서 집행유예를 받아냈다. 당시 성공보수로 받은 50억원은 역대 최고라는 게 서초동의 정설로 통한다. 2009년 개업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 ㄴ변호사는 ‘무죄 제조기’로 이름을 날리면서 첫해 납부한 부가가치세만 수십억원이라고 한다. 반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개업한 ㄷ변호사는 성공보수를 받기로 약정을 맺어본 적도 없고, 맺었다가도 떼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판사 출신 변호사는 변론 요지서를 써내고, 수십 차례에 달하는 재판에 나가고, 구치소에 가서 의뢰인의 비위도 맞춰야 한다. 하지만 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단계에서 영장청구를 막고, 기소되는 혐의를 바꾸거나 줄이고, 무혐의 불기소로 만드는 일을 한다. 수사 지식이 필요하지만 인맥과 안면이 주로 작용하는 일이다. 그래서 검찰 전관의 업무시간당 수입은 일류 메이저리거보다 많다.” 법조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따라서 재판에 강한 법원 출신 전관은 타임차지를, 수사에 강한 검찰 전관은 통계약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의뢰인으로서는 뒤집어 요구하는 게 유리하다. 전관 변호사들이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몰라라 하며 나태해질 가능성은 낮다. 유죄를 받으면 곧바로 소문이 퍼지는 유명인들이어서 의뢰인만큼이나 결과에 민감하다.

타임차지는 현재 민사재판이나 자문업무에서 활용된다. 초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변호사 여럿이 참여하는데 변호사마다 요율이 다르다. 리서치 비용을 비롯해 업무내용을 적어 청구하는데 깎자는 경우가 적지않다. 비싸다는 뜻인지 못 믿겠다는 뜻인지 몰라도 아무튼 깎아 달라고 한다. 그걸 막는 방법은 최대한 꼼꼼하게 쓰는 것이다. 어디에 낼 무슨 자료를 검토해서 시간이 얼마만큼 들었다는 식으로 깨알같이 적는다.” 누구의 변호인이었는지 이름만 대면 입이 벌어질 변호사들의 영업비밀인 셈이다. 따라서 의뢰인으로서는 내역을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변호사가 열심히 일하고 더러는 비용도 깎을 수 있다.

노하우 3 전관을 고용할 여력이 안 되면 국선전담을 붙여달라고 하라. 어설픈 사선보다 100배 낫다.

물론 대다수 피고인은 통계약이든 타임차지든 기본적으로 전관 변호사를 고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죽을 필요가 없다. 형사재판에 정통한 판사들의 귀띔이다. “최근 형사재판에서 국선이 50%, 사선이 20%, 자기 변호가 30%다. 사선들은 맡는 형사사건이 크게 줄다 보니, 사선의 형사재판 실력도 높지가 않다. 법정에 들어와서 하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하다. 국선은 두 종류가 있는데, 국선전담 변호사와 일반 변호사의 부정기적인 국선변호다. 가능하면 국선전담을 선임하는 게 좋다. 매달 수십건씩 형사만 하는 전문가다.” 물론 국선은 무료다. 국선전담 변호사는 2006년 생겼으며, 이듬해 사법연수원을 4등으로 수료한 여연심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가 합류해 화제가 됐다. 지금 라인업도 상당한 수준이다. 부정기로 국선을 맡는 일반 변호사들도 국선전담과 비교되면서 분발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과거와 같이 “선/처/해/주/시/기/바/랍/니/다”라는, 불법에 가까운 ‘10자 변론’은 사라졌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예산의 제약으로 국선전담 혜택을 모두가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형사재판 건수는 늘고 있지만 예산은 줄고 있다.(그래프 참조) 이에 대해서는 변호사 증가에 따른 영업손실을 국가가 형사재판의 사선화로 보전해준다는 비난도 있다. 세계적으로 형사재판은 국가가 기소하고 국가가 방어하는 시스템이다. 사선은 예외적으로 OJ 심슨 살인사건처럼 본인이 원하는 특별한 경우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이라는 미국만 해도 검찰청 옆에 퍼블릭 디펜더(Public Defender)가 있다. “형사재판은 두 당사자의 싸움이다. 기소는 세금으로 국가가 하면서 방어는 개인이 하라는 것은 ‘국가는 실수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다. 미국의 퍼블릭 디펜더를 비롯해 독일의 변호사 보수 상한제, 일본의 국선 중심 재판 모두 형사는 국가가 방어한다는 논리다.” 법원행정처 심의관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의 설명이다.

검찰은 오류가 없다는 확신에 바탕한, 국가가 기소하고 개인이 방어하는 시스템은 변호사들의 돈벌이만을 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민사의 경우 상대가 있기 때문에 한쪽을 봐주면 난리가 난다. 그래서 판사가 함부로 판결을 못한다. 하지만 형사재판은 불기소가 되거나 무죄가 나도 치열하게 문제삼을 상대가 없다. 그래서 검찰과 법원에서 전관을 봐줄 여지가 크고, 그래서 사선 변호는 항상 의심의 대상이 된다. 국립대학의 한 형법 교수의 설명이다. “이번에 없어진 성공보수뿐만 아니라 수억원하는 수임료 자체가 무효일 수도 있다. 구속돼 직장에서 잘리게 되는 사람을 상대로 변호사가 살려주겠다며 수억원을 요구하고 받았다면 그 계약이 합당한지 생각해보자. 민법 104조가 금지하는 궁박(窮迫)을 이용한 계약일 수 있다.” 국선을 요구하는 것은 미안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기소와 변론, 판결까지 국가의 비용으로 해야 한다고 상당수 법조인들은 지적한다. 무죄를 받는다면 의욕이 과다한 검사 탓에 억울하게 변호사만 배불린 것이고, 유죄라면 감옥은 감옥대로 가면서 재산도 날린 셈이고, 그 유죄가 오판이라면 재산 날리고 감옥 가고 화병까지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은 원칙적으로 장기적으로 국가가 방어하는 게 맞다.” 취재에 응한 취재원 전원의 생각이다.

‘성공보수 금지’에도 거물 변호사들 안도, 왜?



성공보수를 금지한 대법원 판결에 변호사 업계가 공분하고 있다. 당장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밝힌 ‘반사회적 계약’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성공보수를 받아온 변호사들은 받았으므로 반사회적이라고 지적된 것이고,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받지도 않았는데 욕을 먹어서 억울하다는 것이다.

판결문을 보면 이렇다. “법률지식이 부족하고 소송절차에 대한 경험과 정보도 없는 다수의 의뢰인은 당장 눈앞의 곤경을 면하기 위하여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과다한 성공보수를 약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중략) 수사·재판의 결과를 금전적인 대가와 결부시킴으로써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그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한다.”

변호사들이 대법원을 비난하면서 “대법원이 성공보수 1억원을 전부 돌려달라는 해당 사건만 해결하지 괜한 간섭을 했다. 반사회적이라면 교과서적으로 소급도 인정해야 하는데 그건 막았다. 대법원이 사실상 입법을 했다”고 말한다. 시민의 지지를 받는 성공보수 금지 판결 자체를 비난하지는 못하고 미묘한 법리를 문제삼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변협은 판결이 이상하다며 곧바로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헌재 분위기는 의외로 싸늘하다. 재판 결과를 문제삼는 소송(재판소원)은 금지돼 있다. 물론 대한변협이 재판소원을 금지한 헌재법 68조 1항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가 하필 시민의 지지를 받는 대법원 판결을 파기해달라는 소송에서, 그동안의 입장을 바꿔 재판소원을 전면 인정할 가능성은 작다.

한편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교과서적으로 소급 무효를 인정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판결하면 소멸시효 10년이 살아 있는 2005년 이후 성공보수 전부가 무효가 된다. 이 경우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이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같은 거물 변호사들의 타격이 가장 컸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이미 약발(?)이 떨어져 만회하기도 쉽지 않다. 이번 판결에 대해 보통 변호사들은 소극적으로라도 반발하고 있지만, 거물 변호사들은 숨 죽이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