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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아∼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베테랑 변사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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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간 '관객 감성 주물주물' "근대사 정서담은 변사극 보존해야"

연합뉴스

"아∼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베테랑 변사 최영준 (인천=연합뉴스) 29년 경력의 변사(辯士) 최영준(사진)은 29일 인천여성가족재단 대강당에서 국내 마지막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 공연을 앞우고 "한국 근대사의 정서를 담은 변사극을 보존하려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2015.7.29 << 최영준 제공 >> tomatoyoon@yna.co.kr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상봉이 아니던가."

무성(無聲)의 오래된 흑백 영상이 스크린에 흐르자 무대 한 귀퉁이 의자에 앉은 최영준(62)의 입이 바삐 움직였다.

거침없는 목소리는 영상 한 장면을 설명하다가 이어 등장하는 배우들의 입 모양에 맞춰 연기를 펼쳤다.

다양한 등장인물을 각기 다른 목소리로 연기하는 그의 입담에 관객들은 웃다가 울었다.

그는 29년 경력의 변사(辯士)다.

1976년에 연극배우로 데뷔, 10년간 무대에서 연기력을 쌓은 그는 우연히 변사극을 보고 매료됐다.

그는 29일 "연극은 무대와 의상 등 준비하는 데 손이 많이 가는 반면 변사극은 무성영화와 목소리만 있으면 손쉽게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며 "연극보다 더 많은 무대를 관객에게 선보이고자 변사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변사는 1910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영화에 소리와 자막이 없던 시절, 수입한 외국영화를 해설하는 변사는 스크린과 관객을 잇는 역할을 했다. 성대모사 등 연기력이 더해지면서 인기를 얻었다.

변사의 연출에 맞춰 무성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변사가 던지는 질문에 영상 속 배우들이 대답하거나 연기를 펼치는 식이다.

그러나 20여년 뒤 음악과 배우들의 목소리가 첨가된 '발성영화'가 등장하면서 변사는 점차 잊혀졌다.

그는 "변사극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라며 "한국 사람들은 조선시대 것만 전통이라고 생각하고 근대사 문화는 전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쇠퇴한 변사극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한 편의 변사극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최영준은 수백번의 연습을 한다.

연기자들이 서로 호흡을 맞추는 연극과 달리 변사극은 이미 제작된 영상에 맞춰 연기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제때 해설과 연기를 펼치지 않으면 곧바로 '공연 사고'로 이어진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관객의 반응이 나온다.

공연 뒤에는 "촌스러운 신파극에 콧날이 찡해지다니 참 신기하네요", "오랜만에 웃다가 울다가 진심으로 박수쳤습니다", "더 울려주세요. 더 많이 울고 싶어요" 등 관객들의 평이 잇따른다.

그가 주로 무대에 올리는 작품은 '이수일과 심순애', '검사와 여선생', '나운규의 아리랑' 등 옛 무성영화다. 세상 풍속이나 가정 비극을 다룬 '신파'를 주로 다룬다.

최영준은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이 추진하는 '찾아가는 영화관' 사업에 참여, 연 50여회의 변사공연을 하고 있다. 이날 인천여성가족재단 대강당에서 국내 마지막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무대에 올린다.

그는 "앞으로 10년간 더 변사로 활동할 계획"이라며 "변사극을 계승하거나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다만 한국 근대사의 정서를 담은 문화를 보존하려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tomato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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