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장어도 사람도 '땀' 흘릴 때 맛이 제대로 살아납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日 장어구이 장인 세키네 준

조선일보

스폰지케이크처럼 부드럽고 폭신한 살 속에 밴 고소한 맛. 숯불에 제대로 구운 장어를 여름 대표 보양식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꼽는 미식가가 많다. 일본 도쿄 '세키네(関根)'는 그런 미식가들이 줄을 서는 장어구이집이다. 미슐랭으로부터 별 1개(최고 3개)를 획득한 데다, 이곳 장어구이를 맛보려면 2개월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식당 주인인 세키네 준(関根潤·42·사진)씨는 "장어구이는 장어와 사람이 '땀'을 흘려야 맛있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장어를 불에 올리면 기름이 몸에서 빠집니다. 기름이 빠진 자리에 다래(양념장)가 속속 배어들어야 맛있는 장어구이가 완성되죠. 사람도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린 다음 물을 마시면 온몸으로 흡수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러려면 장어를 숯불 위에서 무수히 뒤집어줘야 합니다. 일본에는 '장어를 구울 때 만 번 돌려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뜨거운 숯불 앞에서 장어를 굽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은 땀을 흘려야 하지요."

"장어를 제대로 구웠는지 알아보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세키네씨는 "장어 표면을 보라"고 했다. "먹음직스러운 황갈색을 띠어야 합니다. 장어는 날것일 때는 반투명한 색을 띠다가 양념장을 발라가며 구울수록 흰색으로 바뀌면서 양념장이 배어들어 황금빛이 나지요. 잘 구운 장어는 잔뼈가 혹시 남아 있다 하더라도 목에 걸리지 않고 잘 씹힙니다. 천천히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구우면 열기가 몸속까지 잘 파고들어 뼈까지 익거든요."

조선일보

일본 최고의 장어구이 장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세키네 준씨가 만든 장어덮밥. /이태경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장어다. 최근 그가 한국을 찾은 것도 올여름 서울 신라호텔에서 자신의 장어구이를 선보이기에 앞서 한국의 장어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메르스로 행사 취소) "양식을 잘한 장어는 비린내가 나지 않아요. 사료도 좋아야 하지만 양식장에서 키우는 장어 숫자가 적을수록 좋습니다. 1년에서 1년 반 정도 키운 300g짜리 장어가 제일 좋습니다. 너무 크면 뼈가 굵고 껍질이 두꺼워요." 질 좋은 장어 맛을 살리는 건 다래. 세키네씨는 장어를 다듬고 남은 대가리와 등뼈를 달인 육수에 간장과 설탕, 미림 등을 섞어 오래 끓여 진하게 조려 만든다.

장어구이는 크게 관동(關東)식과 관서(關西)식으로 나뉜다.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관동지역에서는 장어의 등을 따는 반면, 교토를 중심으로 하는 관서 지역에서는 배를 따서 장어를 손질한다. 또 관동에서는 장어를 살짝 찐 다음에 구워 식감이 부드러운 반면, 관서에서는 처음부터 불에 굽기 때문에 겉이 바삭하다.

18세 때 우연히 장어집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장어 맛에 빠져 장어를 구운 지 벌써 24년 된 세키네씨는 "장어구이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며 웃었다. "장어를 뜨거운 밥에 올려 덮밥으로 먹으면 밥의 열기에 장어가 쪄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장어와 밥이 혼연일체가 된 듯한 맛이 나지요. 장어구이만 따로 먹으면 바삭한 껍질과 보드라운 속살을 맛볼 수 있고요. 24년째 장어를 굽고 있지만 여전히 물리지 않네요."







[김성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