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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박수찬의 軍] 재향군인회 '돈선거 의혹' 비켜간 보훈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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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국가보훈처 청사 전경(자료사진)


재향군인회가 임원 인사와 본부 사무실 이전 추진과정에서 규정을 무시하는 등 일방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 드러났다. 재향군인회는 수백억원의 손실을 끼친 사람에 대해 탄원서를 제출하고, 관련자를 경영본부장에 임용했다.

감독기관인 국가보훈처는 28일 “재향군인회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지난 6월11일 재향군인회 내부 직원의 진정서를 접수해 같은달 26일부터 7월17일까지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의혹의 핵심인 조남풍 신임 재향군인회장의 ‘돈 선거 의혹’에 대해서는 감사 대상에서조차 제외해 ‘면죄부 감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규정 위반으로 점철된 조 신임 회장의 인사

보훈처 특별감사를 불러온 재향군인회 내홍의 핵심 원인은 4월 취임한 조남풍 신임 회장의 인사에 있다.

조남풍 신임 회장은 지난 4월 ‘3수’ 끝에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만사는 인사에서 시작되므로 좋은 인재를 찾아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2011년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사건으로 향군에 막대한 재정위기를 초래한 최모씨의 측근 조모씨를 경영본부장에 임용하면서 내홍이 시작됐다.

보훈처 감사결과에 따르면, 조 신임 회장은 최모씨의 형과 최모씨 회사의 사내이사인 조모씨를 취임 초기 향군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최씨의 또 다른 형이 지난 5월 27일 조 신임회장을 면담한 후 같은달 8일 임용된 전 경영본부장을 20여일만인 29일 해임하고, 6월 1일 최모씨 회사의 사내이사인 조모씨를 경영본부장으로 임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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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풍 재향군인회장.


조모 경영본부장은 유모 자산관리팀장과 함께 최모씨의 2심 재판을 유리하게 하려고 시도했다. 이들은 6월 11일 최씨의 BW사건 재판부가 사실조회 요청을 하자 같은달 17일 채권 회수금액(214억원)을 철회하는 공문을 조모 경영본부장 전결로 7월 6일 발송했다. 또한 향군의 채권 회수금액을 214억원 보다 236억원이 늘어난 450억원으로 증액해 재판부에 제출하려고 한 사실이 감사 결과 드러났다.

향군의 인사 문제는 산하 기업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임직원 13명을 임명하면서 경영 전문성을 검증하는 공개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보훈처는 “이들 대부분이 조 신임회장 선거캠프에 있던 사람들로 알려지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을 채용한 것은 선거캠프 관계자에 대한 ‘보은인사’”라며 임직원 13명의 임용을 모두 취소하고 공개채용 절차를 거쳐 재임용할 것을 요구했다.

◆ 책임·의혹 핵심은 모두 피해간 보훈처 감사

감사에서는 그동안 향군 안팎에서 제기됐던 조 신임 회장 당선 과정에서의 ‘부정 선거’ 의혹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 신임 회장이 선거에서 당선되는 과정에서의 자금 운용은 조 신임 회장과 경영본부장이었던 조모씨와의 연결고리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보훈처는 감사 과정에서 이 부분은 손조차 대지 않았다. 조 신임 회장이 조씨를 무리하게 경영본부장에 임명한 이유도 감사결과에는 없었다. ‘솜방망이 감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조씨가 최씨의 2심 재판을 지원하기 위해 재향군인회의 채권 회수액을 높인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된다는 지적도 있어 검찰의 수사 의뢰 등에 미온적인 보훈처의 태도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리한 인사에 대한 조 신임회장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경영본부장을 해임하고 임용했다가 사직하는 등 인사 관련 문제로 지출된 급여와 위로금만 수억원”이라며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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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향군인회 안보 자문회의.


보훈처측은 “재향군인회장은 관선이 아닌 선출직이라 직무정지 등의 조치가 쉽지 않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는 입장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조 신임 회장이 물러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지만, 본인은 그럴 뜻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재향군인회 노조 관계자도 “3수 끝에 회장이 됐는데 순순히 물러나겠는가”라며 “물러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버틸 것”으로 전망했다.

이 때문에 보훈처가 실질적으로 재향군인회에 취할 수 있는 대책이 별로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의혹을 해소하려는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감사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재향군인회 노조는 “보훈처의 감사는 조 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부실 감사”라며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한편 다음 주 초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52년 창설된 재향군인회는 서울 잠실의 향군 회관과 10개의 기업을 두고 있다. 연간 4000여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정부지원금을 받지만 5500억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기도 하다.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향군은 우리나라의 안보 핵심 조직”이라고 조직의 존재 의미를 설명한바 있다. 하지만 현재의 ‘복마전’ 재향군인회로는 그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 재향군인회가 진정한 안보 조직으로 거듭나려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한 적폐의 척결이 필요하다. ‘면죄부 감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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