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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메르스 교훈> ⑦ '위기의 환자들'…첨단 의술로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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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임신부 완치하고 출산에도 성공한 건 세계 처음

에크모 치료 조기적용으로 메르스 치명률 낮추는 효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창과 방패를 빗대어 '방역당국은 뚫리고, 의료진은 막았다'는 말이 나온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부의 방역망과 정보 부재 속에 병원마저 뚫리고, 메르스 환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지만 궁극적으로 이 환자들을 구해낸 건 의료진의 노력과 첨단 의술 덕분이었다는 평가 때문이다.

실제로 신규 메르스 환자가 하루 10여명 가까이 나올 당시 환자들의 치료에 매달리는 의료진의 노력은 사투에 가까웠다. 메르스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막기 위해 수술복과 방호복 등을 두겹, 세겹으로 껴입고 땀범벅이 된 채 환자를 돌보는 것은 기본이고,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를 장장 7시간에 걸쳐 수술하는 일도 있었다.

◇ 메르스 임신부 완치하고 출산에도 성공한 건 세계 처음

이 중에서도 메르스에 감염된 임신부의 건강을 지켜내고 출산까지 성공한 것은 국내 의료진의 의료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삼성서울병원에서 109번째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임신부 환자(39)는 이번 메르스 사태 당시 가장 주목을 받았던 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임신부는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에 입원 중이던 5월 27일 어머니를 문병하러 같은 병원 응급실에 들렀다가 14번 환자(35)에게서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돼 국내 109번째 메르스 환자가 됐다.

세계적으로 임신부의 메르스 감염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이 임신부가 건강을 되찾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런 관심 속에 삼성서울병원은 지난달 11일 최종 메르스 확진 판정이 나오자 김종화 산부인과 교수를 주축으로 산부인과, 감염내과, 소아청소년과 교수 등 의료진 11명으로 구성된 전담의료팀을 만들어 집중적인 진료에 들어갔다.

환자와 태아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메르스 증상 등을 수시로 체크하는 것은 물론 혹시라도 모르는 조기 출산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산모는 이후 11일 동안 의료진의 극진한 관리를 받은 끝에 22일 최종 음성 판정을 받고 일반 산과 병동 1인실로 옮겨졌다. 환자는 메르스로 인한 발열이나 기침, 호흡곤란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았으며, 수액을 투여하는 등 일반적인 경과 관찰 수준의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정상 분만을 준비하던 중 23일 새벽 2시 30분께 태반이 조기에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태반조기박리는 분만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태반이 먼저 태반 부착부위에서 분리되는 현상을 말한다.

태반조기박리가 의심되는 만삭 임신부의 경우 일반적으로 즉각적인 제왕절개를 통해 출산하도록 돼 있고, 이 산모 또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제왕절개로 무사히 출산에 성공했다. 신생아도 출산 직후 곧바로 이뤄진 메르스 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았다.

출산 과정에서 출산팀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감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전원이 레벨D 등급의 보호구를 착용하고 수술에 임했다.

수술을 집도한 김종화 교수는 "환자 곁을 지켜야 하는 의료진의 사명감은 어느 때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면서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장윤실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산모가 메르스에 감염된 후 완치되고 신생아 또한 건강한 사례는 세계 최초"라고 강조했다.

◇ 에크모 치료 조기적용으로 메르스 치명률 낮춰

메르스 감염 환자들에게서 관찰되는 주요 증상 중 하나가 중증 폐렴이다. 특히 메르스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 환자들은 비(非)전파 환자보다 심한 호흡곤란이 폐렴과 함께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었다. 통계적으로는 메르스 바이러스 전파자 5명 중 60%인 3명이 호흡곤란 증상을 보인 반면 비전파자 중 호흡곤란을 보인 환자 비율은 16.9%에 그쳤다.

때문에 메르스 격리치료병원에서는 중증 폐렴으로 악화하는 이런 환자들을 치료하는 게 최대의 관건이었다.

지난 7일 기준으로 국내 메르스 치명률은 17.7%(33명)다. 이들 사망자 중에는 암과 심장·폐·신장질환, 당뇨병, 면역저하, 고령 등의 고위험군이 90.9%(30명)에 달했다. 통계치대로라면 평소 특이 질환이 없었던 환자 가운데 사망자는 3명에 그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메르스 사망률이 평상시 내과계중환자실에서 중증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던 환자의 사망률 25∼30%보다 낮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메르스가 유행하기 전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사망했던 환자 비율에 견줘 크게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번 메르스 환자 치료에 '에크모'라는 심폐기능보조장치가 사용됨으로써 치명률을 줄이는 효과가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크모(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는 환자의 몸 밖으로 빼낸 혈액에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속으로 넣어주는 장치를 말한다. 폐가 제 기능을 못해 산소 공급이 불가능해지고, 동시에 심장이 기능을 잃으면 '펌프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이때 에크모를 사용하면 산소 공급과 펌프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대한흉부외과학회 산하 에크모 연구회는 이번 메르스 사태 동안 약 10여명의 중증 폐렴 환자에게 에크모 치료가 적용된 것으로 봤다. 이중 70~80%에서 에크모 치료가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연구회는 추산했다.

대표적으로 음압격리병상을 찾아 무려 600㎞를 이동해야 했던 132번 환자가 서울보라매병원에서 에크모 치료를 받은 뒤 완쾌돼 퇴원했으며, 감염경로가 오리무중이었던 119번 평택 경찰관 환자도 에크모 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반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에게 노출돼 메르스에 감염된 35번째 환자(38·의사)는 아직도 에크모의 탈부착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20일께 상태가 좋아져 에크모를 뗐지만 이후로 다시 폐 기능이 나빠져 에크모를 재부착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에크모 치료를 반복하고 있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흉부외과 정의석 교수는 "이번 메르스 환자 치료에 투입된 에크모의 효과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굉장히 좋았다"면서 "중동의 메르스 치명률이 30%를 웃도는 상황에서 국내 치명률이 17% 수준에 머문 것은 의료진이 에크모 등의 구호장비를 시의적절하게 투입하고, 1~2개월 동안 집에도 가지 않으면서 열정적으로 환자치료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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