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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노동자 울리는 ‘노동법 심판들’]“주휴수당은 통상임금 아니다… 안 줘도 돼” 판·검사 ‘맞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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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동법 모르쇠’ 판·검사들

▲ 근로감독관보다도 전문지식 없고 노동 현실 몰라

‘눈길 부상’ 버스기사 17만원 돌려받는데 2년6개월

공안 검사들이 노동사건 주로 처리 ‘사측 봐주기’


“회사에서 연차휴가 쓴 걸 무단결근 처리하고 주휴수당까지 월급에서 공제했어요. 그런데 주휴수당은 통상임금이 아니기 때문에 안 줘도 된다고 해요. 대한민국 검사가 한 말입니다. 한마디로 검사가 통상임금 개념이 뭔지도 모르고 헛소리를 한 거지요.”

서울 ㄱ여객 소속 버스운전사 이경주씨는 회사가 억지를 써 못 받은 주휴수당 등 17만원을 받기 위해 2년 가까이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다. 노동청에 진정한 후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검 김모 검사(41·사시43회)가 어이없이 불기소 결정을 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고난은 2013년 1월 저녁 운행을 마치고 퇴근하다 눈길에 미끄러져 오른쪽 허벅지 부위가 다치면서 시작됐다. 이씨는 사고 후에도 1주일간 무리하게 근무하다 다친 부위가 부어올라 걸을 수 없게 되자 회사에 알리고 3일간 연차휴가를 사용했다. 하지만 사측은 7일 전에 연차휴가를 신청하도록 한 취업규칙을 위반했다며 무단결근 처리하고 월급에서 주휴수당까지 공제했다.

경향신문

노동계는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에서 노동법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동자로서 사회경험도 없는 판검사들이 노동사건에서 지나치게 사용자 쪽으로 기울어진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대법원 청사 내 법관의 양심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상’ 앞을 한 직원이 지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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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임금 개념도 모르고 사용자 편든 검사

당연히 쟁점은 사전에 허락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차휴가를 무단결근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에 모아져야 했다. 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은 ‘노동자가 부상을 입어 사용 시기를 지정해 연차를 신청했는데도 무조건 못 쉬게 막은 것은 적법한 사용 시기 변경권의 행사로 볼 수 없다’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경력 10년차의 김 검사는 무단결근 처리의 적법성은 판단하지 않은 채 엉뚱하게 주휴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따지고 들었다. 실제로 김 검사가 작성한 불기소결정서엔 ‘주휴수당은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을 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가 제시돼 있다.

이씨를 대리한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배현의 노무사는 “사측에서 ‘통상임금이 아니면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니까 검사는 무단결근 처리의 부당성이 아니라 주휴수당의 통상임금성만을 판단한 것 같다”며 “검사가 아무래도 통상임금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어이없어 했다.

하지만 검사들이 노동법의 기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어이없는 실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남부 공단지역에서 활동하는 노무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사들이 근로감독관을 지휘해야 하는데 근로감독관보다 노동법 전문지식이 떨어져 문제가 됐던 경험이 많다”라며 “아예 근로감독관을 검찰에서 파견받아 수사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사법연수원 졸업 후 곧바로 임관된 검사들 중에는 일반 직장인이라면 상식에 속하는 사안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단협에 조합비 공제(체크오프) 조항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반대하지 않는 한 조합비를 일괄공제해 노조에 입금하는 것은 사용자의 의무고 대법원 판례로도 인정된 관행이다. 하지만 2011년 KEC노조 파괴 사건 당시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사측이 노조비 일괄공제를 거부한 행위에 대해 ‘본인 동의 없이 조합비를 공제하면 임금 전액불지급 원칙 위반’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면죄부를 부여해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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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안검사들의 부당노동행위 ‘조직적 봐주기 수사’ 의혹

노동법을 모르는 검사들도 문제지만 공안부 검사들이 주로 노동사건을 전담처리하는 관행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사회안정을 저해하는 행위로 바라보는 공안부 검사들이 노동3권 보장을 위해 적극적인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2012년 국회 청문회에서 공개된 창조컨설팅의 노조 파괴 문건에서 드러난 발레오전장·보쉬전장·상신브레이크·유성기업 등 5개 사업장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검찰이 1년 넘게 수사를 벌이고 모두 불기소 결정을 내린 배경을 공안부 검사들의 ‘조직적인 사용자 봐주기’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법률원의 김태욱 변호사는 “검찰은 사무실에서 발견된 노조 파괴 문건에 대해 ‘우연히 습득한 것’이라는 피의자들의 상식밖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고소인 주장은 물론 법원이 증거로 채택한 진술도 못 믿겠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컨설팅 대가로 오간 혐의 거래가 4억원이 넘는 데도 검사가 계좌추적도 하지 않았다”며 “사용자 지시로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도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느냐’며 기소를 미루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덧붙였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의 허윤진 노무사는 “공안부 검사들이 노동법을 잘 몰라 노무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문 노무사들이 주로 사용자에 가까운 분들이다 보니 자연히 노동사건 처리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노동법 기본기 안된 판사들

문제는 법원 판사들도 노동법을 모르거나 노동인권에 소극적인 검사들과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서울 ㄱ여객 이씨 사건에서도 지난해 8월 검사가 ‘주휴수당은 통상임금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임금지급 청구소송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소액재판부는 곧바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근로감독관에게 발급받은 체불금품확인원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소액재판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중견 판사는 “소액재판에서는 판사 한 명이 하루에도 수백건씩 결정해야 하는데 검찰에서 불기소 결정문이 넘어오면 사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같은 취지로 결정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다시 항소장을 제출했고 지난달 원고 승소 결정을 얻어냈다. 주휴수당 17만원을 돌려받는 데 2년6개월 가까이 걸린 셈이다.

법원은 행정법원·민사법원에 노동전담 재판부까지 두고 있지만 노동법에 대한 기본 법리를 모르는 전담 판사들도 있다. 지난해 11월 언론중재위에서는 현직 부장판사 출신 심판위원장이 JTBC 프리랜서 부당해고 사건 심리 중에 “내가 노동 전담 재판을 2년 해봐서 아는데 회사에서 맡길 일감이 없어 계약 해지했다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해도 이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동 전담 재판을 2년이나 한 부장판사가 정리해고에 대한 기본 법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2월 한 지상파 방송 무기계약 노동자의 부당해고 구제사건 항소심에서는 노동법 해석의 기본원칙이 무너지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해고노동자가 ‘나는 계약서상 취업규칙 적용을 배제하도록 돼 있는 만큼 불리한 취업규칙 조항을 들어 해고한 것은 무효’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취업규칙 중 근로자에게 유리한 부분만 적용하고 불리한 부분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노동사건에 있어 ‘상위법 우선 원칙’을 대신해 노동자에게 유리한 규범을 우선 적용하도록 한 ‘유리 조건 우선 원칙’이 1심도 아닌 2심에서 부정돼 버린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 드물게 노동사건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 중견 판사는 “판사들이 노동법 특유의 법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민사법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들이 살아온 생활 환경에만 갇혀 노동현장에 대한 현실감각이 부족한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진구 노동전문기자(공인노무사)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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