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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지역공동체 회복 대안으로 부상한 ‘마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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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생기고 살림 펴지고… 주민 힘모아 일군 '행복 동반자'

세계일보

마을기업이 메르스 여파로 침체에 빠진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기폭제가 되고 있다. 마을기업은 주민들이 직접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을 말한다. 마을기업은 지역공동체 회복의 대안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마을기업을 적극 지원하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돕고 있다.

7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마을기업은 2011년 550개에서 2012년 787개, 2013년 1119개, 지난해 1249개로 점차 늘고 있다. 지난해 1만여명의 일자리가 창출됐고 1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정부의 지원 없이 자립해 운영하는 마을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2011년 7개에서 지난해 862개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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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시 마장면의 어름박골 주민들은 ‘어름박골 쪽빛마을기업’을 설립해 맥이 끊어진 전통염색 재료인 ‘쪽’ 농사와 이를 활용한 염색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2013년에는 5가구가 힘을 모아 마을기업을 만들었고, ‘한국천연쪽협동조합’을 설립해 생산, 상품화, 유통까지 담당하고 있다.

벼와 밭 작물이 소득의 전부였던 작은 마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건 6년 전 천연염색 연구가 김성동(45)씨가 귀촌을 하면서다. 대부분이 70대 이상인 마을주민들은 처음엔 낯선 젊은이가 와 ‘쪽 농사’를 짓자 다소 불편한 시선으로 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쪽에 대한 추억이 있는 노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음도 열게 됐다. 지금은 마을주민뿐만 아니라 쪽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젊은 회원들도 참여, 39명의 조합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마을의 제품은 이천시의 공동브랜드로 선정돼 대형 유통매장과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들어서는 250%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이 성공한 마을기업은 전국에 수두룩하다. 울산시 북구 연암동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압축공기로 모래를 뿌려 조각을 하는 샌드블러스트라는 기법을 사용해 친환경 목재 간판이나 방향표지판 등 각종 안내판을 만들어 판매한다. 2012년 7월 울산대 디자인대 봉사동아리 ‘사랑나눔’ 선·후배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다. 채수근(38) 대표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즐겁고 의미 있게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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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북구 연암동의 마을기업 ‘아낌없이 주는 나무’ 직원들이 친환경 목재 안내판을 제작하고 있다. 이 기업의 대다수 직원은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이다. 아낌없이주는나무 제공


직원 22명 가운데 14명은 마을주민이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거나 전문기술이 없어 취업이 어려운 여성들이 대다수다. 울산대 출신의 디자이너 5명도 디자인업계에서 일하다 육아 등의 문제로 퇴직한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이다. 이 때문에 직원이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채 붓으로 나무를 채색하는 모습이나 사무실 한편에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뛰노는 모습은 이곳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아낌없이주는나무는 2012년 3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흔치 않은 아이템과 디자인 덕분이었다. 마을기업이 된 첫해 우수 마을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규모가 더 커졌다. 2013년 7억원, 지난해 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3년 설립된 부산시 동구의 마을기업 ‘희망나눔세차’는 조금 특별하다. 전국 최초의 쪽방촌 마을기업이다. 쪽방촌 노숙인의 자립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초음파 장비를 활용한 친환경 세차공법을 쓴다. 물을 적게 쓴다. 종이컵 한 컵(180㎖)보다 적은 물(150㎖)이면 차 한 대를 세차할 수 있다. 마을기업이 출범하기 전 세종시의 한 기업에서 비법을 배워 왔다. 출장세차도 한다. 세차비는 일반 세차장보다 20∼30% 저렴하다.

그러나 일감 확보가 쉽지 않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블로그 등을 통해 홍보를 강화했다. 한국전력 부산본부, 부산국세청, 연제구청 등과 정기 세차 계약을 맺으면서 고정 물량도 확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골손님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지난해에는 4000만원의 매출을 냈다. 올해 5월까지 매출액 규모만 3000만원이다.

전북 완주군의 마을기업 ‘마더쿠키’는 우리밀과 쌀을 이용해 빵을 굽는 곳이다. 2009년 봉덕마을 주민 3명으로 출발한 이곳은 지금은 12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다문화여성과 고령층이 대다수다. 마을에서 생산되지 않는 재료들을 제외하고, 재료의 90% 이상을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다. 지난해에는 5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같이 마을기업은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정부 등의 지원 손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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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부는 메르스 사태 이후 마을기업 상품의 판매 활성화를 위해 현재 온라인 쇼핑몰 G마켓, 옥션에서 ‘마을기업 온라인 박람회’를 진행 중이다. 한국마을기업협회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마을기업 생산 제품이 메르스와 무관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마을기업이 잘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 간 갈등, 적자 등으로 문을 닫은 곳들도 있다. 값싼 커피를 제공하고 수익을 올리자는 취지로 2013년 5월 설립된 대전시 ‘커피마을협동조합’은 같은 해 12월 폐업했다. 조합원 간 결속력이 떨어진 탓이다. 적자로 한 차례 위기에 봉착하자 이곳은 별다른 반등 의지 없이 사업을 접고 말았다. 경북 포항시의 돌장어 영어기업은 조합원들 간 갈등으로 3개월 만에 스스로 사업을 포기했다. 커피 등을 팔던 부산시 수영구 햇살가득나눔가게는 계속되는 적자 탓에 폐업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전국종합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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