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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박수찬의 軍] '구시대 유물' 군대 제식훈련, 계속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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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분열중인 장병들(자료사진)


“군인들은 왜 제식훈련을 받나요?”

최근 군 입대를 앞둔 사람으로부터 이같은 질문을 받고 ‘군대에서 제식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는 훈련이 있다.

바로 제식훈련이다. 조교의 구령인 “왼발, 왼발, 왼발, 우로 돌아 가!”에 맞춰 부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제식훈련은 병사들 사이에서 가장 하기 싫어하는 훈련 중 하나로 꼽힌다.

사실 군대에서의 훈련은 ‘싸워 이기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모든 훈련과 교육은 전장에서 병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가르치는데 집중한다.

제식훈련을 통한 전술적 효과는 이미 100여년 전에 사라졌음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국가의 정규군이 제식훈련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제식훈련=전투력’ 이던 시절 있었다

예전에는 제식훈련을 통해 대형을 형성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전투력으로 직결됐다.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군과 싸우는 스파르타 군대의 밀집대형 역시 평소의 강도 높은 제식훈련의 결과물이었다. 서방 세계를 재패한 로마군도 보병부대간의 대형 형성을 통해 밀집된 전투력을 만들어냈다.

기사가 중심이 되던 중세 시대에는 잠시 주춤했지만, 총기와 화약의 발명으로 전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제식훈련의 중요성은 다시 부각된다.

15세기부터 유럽을 호령했던 스페인군의 ‘테르시오’(tercio) 전술도,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43년 5월 로크루아 전투에서 스페인군을 격파해 테르시오 전술의 종말을 이끌어낸 프랑스군의 전투력도 제식훈련의 결과다.

이 당시 소총은 유효사거리가 100m에 미치지 못했고, 분당 1발 꼴로 발사속도도 낮았다. 때문에 화력의 집중이 중시됐고, 화력 집중을 위해서는 일직선으로 늘어서서 일제 사격을 가해야 했다. 제식훈련은 이를 위한 밑거름 역할을 했다.

이러한 ‘선형 전술’은 18세기 나폴레옹이 포병을 이용한 전술을 중시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후 19세기 소총과 대포 기술의 발달로 발사속도와 정확성이 높아지면서 중요성이 약해졌다.

세계일보

도열해있는 장병들(자료사진)


쇠퇴기에 접어든 제식훈련의 전술적 효용성에 결정타를 안긴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진격해오는 적을 향해 기관총을 사격하면서 한 전투에서 수십만명이 사망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선형 전술 대신 은폐와 각개전투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제식훈련은 신병교육과정이나 분열 등 행사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제식훈련은 ‘전통·기강·연대의식’ 상징

스텔스 전투기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로봇이 전장을 누비는 21세기에서 제식훈련은 어떻게 보면 ‘구시대의 유물’일수도 있다.

하지만 군인들은 병사들이 제식훈련을 받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한 장교는 “군인은 기본적으로 ‘각’이 중요하다. 상관과 마주칠 때나 외부에 나갈 때 등에도 ‘각’이 필요하다. 바꿔 말하면 기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기강 확립을 위해서는 제식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과거 군대의 전통이 계승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현대 사회의 군대는 대부분 근대 시대 서양 군대의 전통을 계승한다. 우리나라는 미군의 영향을 받았고, 미군은 서유럽 군대 문화와 전통에 정신적 뿌리를 두고 있다.

장병들간의 연대의식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교육을 위한 다양한 방법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때문에 병사들은 기억에서는 잊혀져도 명령이 내려지면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통해 숙달한다. 부대원들이 신병교육 과정에서 제식훈련을 통해 군인으로서의 자세를 익히면, 같은 동작을 함께 취하면서 동질감과 연대의식도 함께 구축된다는 주장이다.

제식훈련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서로의 견해가 다르지만, 그 필요성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군인의 생명인 기강과 정신적 뿌리인 전통이 중시되는 한 병사들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연병장에서 “우로 돌아 가! 왼발, 왼발!” 하고 외치는 조교의 목소리를 들으며 제식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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