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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정보보호의 날> ② 경찰·검찰 앞에 벌거벗은 개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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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가면 가입자 대신 수사기관 대변하는 이통사들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윤보람 기자 = "스마트폰 하나로 고객이 언제 일어나는지,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지, 누구를 만나서 뭘 먹는지 다 알 수 있는 것이 통신 사업자입니다."

한 이동통신사 최고위 임원이 최근 자사 사물인터넷 서비스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가입자 생활 패턴을 낱낱이 알 수 있어 사물인터넷 서비스의 적임자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동통신사들이 휴대전화 사용자의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에 무분별하게 제공한다는 지적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 영장 없는 통신자료 제공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뤄진다.

한 해 동안 통신 사업자가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등에 넘기는 가입자 개인정보는 수천만 건에 달한다. 정작 가입자 본인은 자신의 정보가 외부 기관에 제공됐는지조차 알기 쉽지 않다.

6일 미래창조과학부의 '행정부처별 통신사실 확인자료 현황' 등에 따르면 정부 주요 기관은 2010∼2014년 통신 사업자로부터 무려 1억7천여만건의 통신 관련 자료를 제공받았다.

20개 정부 부처가 1천170만건, 경찰이 898만건, 검찰이 254만건, 국가정보원이 5만건의 자료를 각각 가져갔다. 대부분 자료는 영장 없이 임의 제출됐고 가입자 본인에게는 고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통신 사업자 등은 가입자 개인정보를 엄격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사기관에 제공해온 관행에 관해 그다지 반성하는 기색이 없다. 가입자들이 직접 제기한 소송의 경과로 알 수 있다.

2013년 국내 이동통신 3사 가입자인 서모(44)씨, 김모(31)씨, 임모(37)씨 등 3명은 통신자료의 외부 제공 여부를 알려달라고 각 회사에 요청했으나 사실상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SK텔레콤[017670]은 요청을 거부하거나 답변을 거부했고, KT[030200]와 LG유플러스[032640]는 4∼5개월 동안 요청을 거부하다가 서씨 등이 소송을 제기하자 통신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뒤늦게 회신했다.

정보통신망법은 가입자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통신 사업자의 현황 공개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동통신사들은 개인정보보호법 예외 규정 등을 이유로 이 같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특히 SK텔레콤은 소송에서 "가입자의 현황 공개 청구에 무조건 응하면 수사기관의 수사 업무에 중대한 지장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가입자가 아닌 수사기관 입장을 적극 대변한 셈이다.

그러나 법원은 수사기관의 편의보다 가입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더 보호가치가 크다며 가입자들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SK텔레콤이 통신자료 제공 현황을 공개하고 가입자 1인당 3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KT와 LG유플러스에게도 1인당 20만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했다.

이 사건은 현재 이동통신사들의 상고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차모(35)씨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경찰에 넘긴 네이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도 유명한 사건이다. 네이버는 이용약관을 근거로 배상 책임을 부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회원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 의무를 망각하고 경찰에 기계적으로 이를 제공한 네이버가 정신적인 손해를 입은 차씨에게 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네이버의 판결 불복으로 이어진 상고심에서 사건 당사자도 아닌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최근 수사기관을 대표해 네이버를 두둔하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동통신사 등은 가입자를 상대로 2심까지 패소하고도 반성의 기색 없이 기존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주장을 보면 수사기관과 한통속이라 할 만하다"고 꼬집었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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