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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그리스 위기> 한국-그리스, '서글픈 역사' 비슷…위기극복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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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그리스 국민투표 긴축안 거부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한국과 그리스는 비슷한 점이 많다.

이들 두 나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반도국가여서 끊임없이 외세의 침탈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이 겪은 고통과 서러움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경제위기로 인해 구제금융을 받았다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경제 위기 극복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조기에 졸업한 모범국가로 꼽힌다. 반면에 그리스는 구제금융이후 갈수록 수렁에 빠지는 모습이다.

◇ 유럽과 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파란만장한 역사도 비슷

그리스와 한국은 공교롭게도 모두 북위 38도에 위치한 반도국가다.

유럽과 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라는 지리적 유사성 때문에 식민지배와 내전을 겪는 등 역사적으로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리스는 1830년 독립한 이후부터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 열강들의 공략 대상이었다. 이들 강국은 그리스를 자국의 영향권에 두기 위해 다툼을 벌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그리스는 3년여간 독일과 이탈리아, 불가리아에 점령당했다. 종전 직후 공산주의 세력과의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섰다가 민주주의 정권으로 교체됐다.

한국도 열강의 세력다툼→식민지→내전→군사정권→민주주의를 거쳤다. 그리스와 비슷한 역사를 밟은 것이다.

특히 그리스가 냉전 당시 발칸반도에서 유일한 자유주의 진영 국가로서 미국의 지원을 받은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 중국이 장악한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반도에서 홀로 자유주의를 지켰다. 그리고 그리스처럼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

포린폴리시(FP)는 그리스가 현재 EU에 속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는 하지만 같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나 중국에 친근감을 느끼는 국민이 꽤 있다. 한국은 지금도 중국의 유교문화권에 들어간다.

◇ IMF 구제금융은 공통점, 그 과정은 달랐다

한국은 1997년 11월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당시에 한국은 외국인들의 썰물같은 자금 회수를 감당하지 못해 국가부도 위기에 놓였다. 한국은 6.25 전쟁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다급하게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리고 총 195억 달러를 받았다.

공짜 점심은 없었다. IMF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에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이는 금융기관의 통폐합, 기업 도산, 감원 등으로 이어졌다. 실업자가 넘쳐났고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서울시내의 북한산, 관악산 등에는 정리해고된 직장인들이 평일에도 몰려들었다. 부인과 자녀들에게는 해고된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침에 양복차림으로 집을 나온 뒤 산기슭에서 몰래 등산복으로 갈아입는 모습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IMF의 요구사항을 엄격히 지켰다. 그리고 채무 135억 달러를 만기보다 8개월 앞당겨 상환했다. IMF 3년8개월 만인 2001년 8월에 채무 전액을 조기에 갚고 구제금융을 완전히 졸업한 것이다.

그리스는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IMF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구제금융 규모는 1차의 경우 1천100억 유로, 2차는 1천300억 유로였다.

그리스는 구제금융의 대가로 지난 5년간 긴축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은 2008년 대비 25% 줄었고 현재 실업률도 25%를 기록하고 있다.

긴축 정책을 견디다 못한 민심은 구조조정 협상안 수정을 공약으로 내건 시리자 정권을 택했다. 또 지난 5일 국민투표를 통해 긴축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현재 그리스 정부는 이런 여론을 무기로 채무 재조정을 요청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그리스의 위기당시 경제적 여건은 다르다.

외환위기 당시에 한국은 경기회복을 위해 환율, 금리 등의 정책을 쓰는데 큰 제약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는 유로화에 묶여 있어 독자적 통화정책이 아예 없다.

또 위기당시에 한국은 선진국의 양호한 경기흐름으로 수출의 덕을 봤다. 그러나 그리스는 글로벌 경기부진 때문에 외부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게다가 그리스는 수출산업의 비중이 크지 않다.

◇ 한국 연금, 그리스와는 다르다

그리스 채권단이 협상 최종안에서 중점적으로 개혁을 요구한 부분은 연금제도다.

그리스의 연금 지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6%에 달하고 소득대체율은 90%나 된다. 그래서 과도한 복지의 핵심 사례로 꼽혀왔다.

특히, 저소득 노인과 장애인에게 지급하는 '사회연대보조제도'(EKAS) 보충 연금은 다른 2개의 노인 기초보장연금과 중복된다.

그리스는 직군별로 연금을 운용해 과거 총 130여개의 연금제도가 동시에 가동됐다. 자연히 수혜자 중복 문제가 제기됐다.

한국은 최근 공약에 따라 노인에게 최소 10만원에서 20만원까지 주는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하면서 그리스의 전철을 따르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리스와 한국의 연금제도는 다르다.

우선 한국은 공적연금기관인 국민연금이 1차 연금 역할을 하면서 중복 수혜 등의 문제가 없다는 점이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공무원 연금이나 군인 연금 등을 제외하고는 직역별 연금도 거의 없다.

연금제도의 발전 방향성에서도 그리스는 130여개의 연금을 13개, 3개로 순차적으로 통합하는 방향으로 왔다면, 한국은 공적연금을 중심으로 보조적 성격의 연금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복지제도가 그리스보다는 건강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한국도 갈수록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인해 복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의 복지제도가 그리스와 유사하다면 결국 우리 국민의 고통도 이 나라 국민과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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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투표' 할머니의 환호 (테살로니키<그리스> AP=연합뉴스) 5일(현지시각)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한 반대 투표 지지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리스 유권자들은 이번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표 차로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했다. 채권단은 구제 금융의 대가로 긴축 강화를 요구했었다. ci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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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아테네 AP=연합뉴스) 그리스가 전날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선택한 가운데 6일(현지시간) 아테네의 한 은행에서 직원이 몰려든 노인들에게 연금 지급에 앞서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다. bull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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