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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동행 취재> 마포대교 자살지킴이…112 수호팀’엔 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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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한 전화에 전순찰차 동원령…일촉즉발 위기끝에 극적 구조

지구대 한켠에 작은방 마련…구조자 설득·상담활동 후속조치도

출범 4개월 140명 생명 구해


“고3 아들이 죽겠다며 한강으로 갔어요”

지난 달 6일 오후 9시30분께 112로 한 여성의 긴박한 전화가 걸려왔다. 고3 아들이 “게임 좀 그만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화가 나 언성을 높이다 한강으로 향했다는 내용이었다.

아들 인성(19ㆍ가명)군의 인상착의를 파악한 서울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 ‘112생명수호팀’은 즉각 전 순찰차를 동원해 한강을 수색했다.

헤럴드경제

서울 여의도지구대에는 작은 방이 있다. 자살시도자를 구조한 ‘112 생명수호팀’이 자살시도자를 설득하고 상담하기 위해 마련된 방이다.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이 방에서 생명수호팀 경찰들은 길게는 네다섯 시간에 걸쳐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달래준다. [사진제공=여의도지구대]


‘아들이 한강에 들어갔다’는 제보만 있을 뿐 어느 방향에서 자살을 시도한 건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의도 지구대 1팀장을 비롯한 상황근무자는 즉각 한강순찰대에도 협조를 요청하고 지령실과 무전하며 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 등 고수부지 일대를 순찰차를 타고 뒤졌다.

수색팀은 원효대교 북단에서 남단으로 향하며 한참을 찾아 헤매던 중 어머니가 일러준 인상착의와 비슷한 남성이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인성군이었다. 수색팀은 즉시 인성군을 난간에서 끌어내렸고, 설득해 지구대로 데려왔다.

매일 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지구대에서 두세 번씩 벌어지는 일이다.

기자가 직접 찾은 여의도지구대 ‘112 생명수호팀’은 서울 뿐 아니라 경기, 인천, 부산 등지에서 고단한 몸을 이끌고 한강을 찾는 사람들의 삶을 구조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김형렬 여의도지구대 지구대장은 “주로 젊은 사람들이 ‘애인과 헤어졌다’ ‘왕따를 당한다’ ‘남편과 싸웠다’는 이유로 자살을 기도한다”며 “구조 이후 설득하고 상담하는 일이 이제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전국 최초로 여의도지구대에 신설된 자살기도자 구조전담 ‘112 생명수호팀’ 4명의 경찰은 지난 4개월 간 약 140여 명의 생명을 구했다.

하루 두세 명이 자살을 하러 한강을 찾는데, 올해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 죽음에 이른 사례는 다섯 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12생명수호팀은 구조경험이 많은 4명을 자살자 구조를 전담하게 해 2인1조로 움직이고 있지만, 다리 난간에 매달린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만이 임무의 전부는 아니다.

잠시만 한 눈을 팔면 혼자 지구대 밖을 나가 다시 뛰어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가 조치 했는데 집에 가다가 또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여의도지구대는 지구대 한 켠에 작은 방을 마련했다.

단지 자살시도자를 구조하는 데서 임무를 끝내지 않고, ‘설득’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이 방에는 ‘힘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함게 커다란 곰인형도 놓여져 있다. 이 곳에서 수색팀은 자살을 시도한 사람과 네다섯시간여 간 상담을 진행한다.

실제로 인성 군의 경우 상담 결과 고3인 아들이 게임중독으로 어머니와 자주 다투다 삶을 비관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 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그간 대화가 단절되며 서운했던 점을 털어놓은 후 귀가조치됐다.

김 지구대장은 “마음을 편하게 갖게 하기 위해서 낸 아이디어”라며 “인계할 가족들이 올 때까지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간 이후에도 계속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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