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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연애도 못하는 판에…" 내집마련 등진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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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 넘어 '절식남' 등장..부동산 시장 악재로

결혼적령기 男 혼인 기피 주택 수요 감소 불러

분양 몰리는 건 기혼자들 2030 부동산 구매 '양극화'

이데일리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요즘 남자들은 너무 깐만 봐요.”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미혼 직장인 윤미해(가명·32·여)씨는 이렇게 불평했다. 결혼을 위해 지난 2년여간 부지런히 소개팅했지만, 남자들이 도통 적극적이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호감을 표현하던 남자들도 연락을 못 하거나 약속을 취소하면 금세 관계가 끊긴다고 그는 하소연했다.

그 남자의 사연도 들어보자. 최상훈(가명·34)씨는 최근 더는 한집에 살 수 없다는 부모 성화에 떠밀려 서울 관악구에 월세 오피스텔을 구했다. 서울의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그는 중소기업을 몇 차례 다니다가 관두고 다시 취업을 준비 중이다. 최씨는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도 잘 해보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며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연애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지금처럼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부동산시장을 달구는 화두 중 하나는 ‘돌아온 20·30세대’다. 인구 증가 정체에 따른 주택 수요 감소, 꺼져버린 집값 상승 기대감에 전세로만 눌러앉던 청년 세대가 구매 수요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 건너 불구경’인 이들도 적지 않다.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않고 내 집 마련에도 무관심한 싱글족들이 늘고 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아파트 분양시장에 몰리는 20·30세대만 봐도 대부분 결혼한 부부이지 미혼자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송인호 KDI(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젊은 세대가 최근 주택시장의 주도층으로 떠오른 것은 전세난 속 저금리에 따른 효과”라며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미혼자 증가 같은 인구 구조의 변화가 주택 수요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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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연애도 싫다는 ‘절식남’의 등장

결혼을 등진 청년의 중심에 한국판 ‘절식남’(絶食男)이 있다. 이성 교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초식남’(草食男)을 넘어 연애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여성에게 적대감을 보이기까지 하는 젊은 남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장기 경제 불황이 낳은 독특한 세태 변화 양상이 국내에도 이식되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40세 미만 남성의 1000명당 혼인 건수는 133.7건으로, 1년 전보다 8건 줄었다. 최근 5년 새 최저치다. 한국인구학회 분석 결과, 국내 30~34세 남성의 미혼 구성비(미혼율)는 1995년 18.6%에서 2010년 49.8%로 2배 이상 폭증했다. 같은 나잇대 여성의 미혼율(28.5%)을 훌쩍 웃돈다. 나이가 꽉 찬 결혼 적령기 남성 2명 중 1명이 결혼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15세 이상 서울시민의 55.6%(2014년 조사)만이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8년에는 이 비율이 68%였다. 연애하고 싶지만, 경제적 사정 등으로 바람을 이루지 못한 싱글족도 절반 정도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18~49세 미혼 남성 64.9%, 여성 56.5%가 이성 교제를 원했다. 하지만 실제 교제 비율은 남성 33.8%, 여성 35.6%에 그쳤다.

통계청은 2004년 전체의 14.2%에 불과했던 서울의 미혼 가구가 2030년에는 23.8%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15년 뒤에는 세 집 건너 한 집꼴로 싱글족이 사는 셈이다.

◇‘캥거루족’ ‘인테리어남’을 아시나요?

문제는 이 같은 미혼 인구 증가가 이 세대의 부진한 내 집 마련과 주거 불안정, 저출산 심화, 주택 수요 감소 등을 부른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주거 실태 조사를 보면 가구주가 40세 미만인 가구의 자가 보유율(집을 보유한 가구 비율)은 2006년 38.5%에서 지난해 32.8%로 5.7%포인트 떨어졌다. 세 집 중 한 집만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혼인 상태와 주택 소비를 잇는 연결 고리는 소득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가 노동패널 11차연도(2008년) 자료를 분석해 봤더니, 서울에 사는 40세 이하 1인 가구의 연 소득은 2533만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연 3891만원)의 65%에 불과했다. 이들 1인 가구는 나이가 들수록 소득이 급격히 줄고 주거비 부담은 커졌다.

배윤지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컨설턴트는 “혼자 사는 가구는 결혼한 가정보다 소득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말했다. 생계비를 홀로 마련해야 하는 싱글족은 맞벌이 부부보다 실직 등으로 인해 소득이 급감할 우려가 커 주택 구매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어지간한 고소득자가 아닌 한 ‘결혼해야 돈(자산) 모은다’는 어르신들의 조언은 이런 점에서 결코 틀리지 않는다.

부모와 같이 사는 ‘캥거루족’과 원룸 꾸미기에 열을 올리는 ‘인테리어남’ 등이 늘어나는 것도 특징이다. 서울에서 부모와 동거하는 30·40대는 2010년 48만 4663명으로 2000년(25만 3244명)보다 91%나 증가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5월 성인 남녀 3574명에게 설문한 결과, 미혼자의 42.1%가 자신을 캥거루족이라고 했다.

진미윤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시장이 살아나고 집값이 오르자 역설적으로 부모에게서 자립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1인 가구의 인테리어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 운영자인 옥수정 루머스 대표는 “인테리어 1대 1 컨설팅을 하는 이들의 70%가 젊은 남자들”이라며 “집안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이들이 4~5년 살 집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 복지도 결혼·출산에 초점

정부의 각종 복지 정책도 이들을 보살피진 않는다.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 복지사업의 경우 부양가족 수 등을 중시하는 가점제인 데다, 각종 공제·수당 등 젊은 세대 지원책도 이성 교제에서 한 발 더 나간 결혼과 출산 장려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노동·주거가 연애를 가로막고 다시 소득 위험에 노출돼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박은철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숙인 실태를 조사해보면 3분의 2가 장기간 독신으로 산 사람들”이라며 “정부가 연애하지 않는 청년들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영희 SH공사 도시연구소 소장은 “공공의 재정 투입 부담이 적은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민간의 사회 주택 공급을 활성화해 주거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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