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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커버스토리]'잊혀질 권리' 어디까지 인정하나..공감만 할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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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유럽연합(EU) 사법법원은 구글에게 개인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처리 삭제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구글은 10여년 전 경범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독일의 한 교사가 판결 내용을 다룬 기사를 삭제해 달라 한 요청에 응했다. 이후 해당 교사 이름에 대한 검색결과에서 관련 페이지가 삭제됐다.
#그러나 영국 방송사 BBC는 EU 법원 판결 이후 구글이 검색 결과에서 삭제한 자사 기사 목록을 따로 모아 지난달 BBC 웹 사이트에 공개했다. BBC는 매달 구글 검색결과에서 삭제된 기사들을 목록에 추가해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검색결과 등 인터넷상에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 도입 논쟁이 유럽을 시작으로 번진지 오래다. 그러나 국내에선 여전히 해당 권리의 법제화를 놓고 지리한 공방만 이어지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잊혀질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부터 언론기사 적용 여부를 포함한 '알권리' 및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잊혀질 권리' 행사 오남용 가능성 등 세세한 부분에서 이견이 여전하다.


유럽에서도 '잊혀질 권리'의 적용 범위와 이에 따른 부작용을 놓고 반발이 지속되고 있어 국내에선 한국사회 특징을 반영한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어디까지 삭제할 것인가
5일 업계에 따르면 검색사업자 구글 등에 요청되는 검색 삭제 요청의 주요 내용으로 범죄행위와 관련된 언론기사가 많다.


구글은 EU 법원 판결 이후 1년간 유럽에서 접수한 삭제 요청 25만여건 가운데 자체 심사를 거쳐 41.3%는 삭제하고 58.7%는 거절했다.
구글은 범죄 피해자에 대한 정보와 개인의 무죄가 입증된 경우, 또는 집 주소 및 특정상황 연루 등의 개인정보에 대해선 삭제 요청을 수용했다. 그러나 검색 삭제 요청을 한 개인정보 주체의 확정된 유죄와 무거운 범죄 등 과거 범죄 행위에 대해선 삭제요청을 거부했다.
실제 업무상 사기 혐의가 있는 오스트리아인 부부가 자신들의 사건이 언급된 기사를 삭제해달라는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고 영국 남성이 자신이 근무지에서 저지른 성범죄로 인해 해임된 사실을 언급한 기사 링크를 삭제해 달라고 한 요청도 거절했다.
앞서 언급된 BBC의 사례와 같이 언론기사는 '잊혀질 권리'로 인해 링크 삭제 등 단순히 검색결과에서 사라질 뿐 내용은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는 점에서 해당 권리의 적용 범위 논란으로 이어진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잊혀질 권리 개념 자체가 원본 데이터와 관련된 것"이라며 "원본 데이터 삭제를 거론한다면 대부분 언론사가 적용될 수 있어 언론기사들을 검색엔진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지속적으로 검색엔진을 통해 기사가 삭제되거나 차단될 경우 인위적인 개입이 만연하돼 검색엔진 자체가 누군가의 의도로 조작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우려되는 것은 잊혀질 권리가 자칫 범죄세탁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언론기사에 대한 잊혀질 권리를 도입한다면 정정보도청구, 반론보도청구, 추후보도청구 제도와의 관계 설정에도 신경써 기사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최성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도 "유럽에서도 무조건 요청하면 삭제하는 관점은 아니다"라면서 "'잊혀질 권리'를 추가적으로 보장할 때 검색 원본을 건드려야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법부터 만드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공감은 하지만…
'잊혀질 권리' 법제화 찬성여론과 함께 정부도 이에 공감한다는 입장이나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는 점에서 실제 도입 가능성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법제화 찬성론자들은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내 개인정보가 어떠한 상태인지 '열람권'을 만들어 삭제할 것인지, 보존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정보 만료일'도 추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발맞춰 국회에선 자신이 작성한 글 등 저작물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수년째 관련 상임위에 계류중이다.
일단 '잊혀질 권리' 법제화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이를 현실화시킬 수단과 논란 종식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법제화 속도에 불이 붙지 않고 있다.
해당 개정안 검토의견에서도 "이용자가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범위가 불명확해 검색 사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 가능한 측면이 있다"며 "해당 저작권자가 삭제가 필요한 특정 사이트나 홈페이지를 지정하는 등의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수사나 소송을 위해 증거 보존이 필요한 경우와 표현의 자유 및 알권리 등 삭제예외 사유도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당국도 해당 제도 도입에 대해 공감한다 면서도 가시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잊혀질 권리'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서면질의 답변을 통해 "도입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잊혀질 권리'는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하는 임시조치를 통해 일부 지원된다"고 답하는데 그쳤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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