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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정치 풍자’ 또 몸살…아이고, 개그를 다큐로 받으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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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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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의 메르스 초기 대응 실패처럼, 뉴스에 다 나온 사실도 못 하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못생긴 사람한테 못생겼다고 못 하듯, 분명 찔려서 그런 건가요?”

지난달 14일 방영된 <한국방송2>의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경징계)인 ‘의견 제시’를 받은 데 대해 개그 프로그램을 오래 연출한 예능 피디 ㄱ씨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민상토론’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풍자했다가 품위유지를 위반했다며 징계를 받았다.

코미디 같은 방심위 결정으로 개그 프로그램의 정치 풍자가 더욱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민상토론’은 권력이 무서워 제대로 말 못 하는 사회를 풍자해왔다. 잔뜩 주눅이 든 채 간신히 한마디 내뱉었던 유민상이 이제는 아예 입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냐는 자조가 나올 법도 하다. 지난 1~2년 <개그콘서트>에선 본격적인 정치 풍자 꼭지를 찾을 수 없었다. 지난 4월5일 처음 방송한 민상토론이 ‘가뭄 속의 단비’인 이유다. 이 꼭지는 따끈따끈한 주요 정치·사회적 현안을 풍자란 도마 위에 올려 인기를 끌었다. 티나게 조심스럽고 소심한 제스처와 함께. (▶ 관련 기사: ‘정치 풍자 외압 증후군’ 의심되는 4가지 ‘증상’)

메르스 무능정부 풍자한 ‘민상토론’
티나게 주눅든 소심한 제스처에
방심위, “품위유지 규정 위반” 징계

정권 아킬레스건 건드리는 개그 땐
노골적 외압 대신 간부들 한마디 툭
“나 좀 불편해” “그거 재미없더라”
피디·개그맨 알아서 몸 사리게 돼


“이명박 정권 때부터 정치 풍자가 매우 힘들어진 건 사실이다. 가끔은 이곳이 민주국가가 맞나 싶을 때가 있다.”(정치 풍자를 시도한 적 있는 개그맨 ㄴ씨)

개그맨들이 그냥 정치 풍자하게 내버려두면 안 되는 걸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절, 정치 풍자 개그는 어림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노태우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나, 이 사람을 코미디로 다뤄도 좋다’는 공약을 내걸었을까.

요즘 정치 풍자 개그를 만드는 피디와 개그맨들을 두렵게 만드는 건 ‘간부’들의 한마디다. 정치 풍자 개그를 연출했던 예능 피디 ㄷ씨는 “간부가 밥 먹자고 불러서 ‘그 코너는 좀 재미없더라, 넌 어떻게 생각하니? 난 불편하던데’라고 말하면 아 신호구나 싶어 수위를 낮추게 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예능 피디 ㄱ씨도 “위에 시피(부장급 피디), 국장, 사장 등 간부가 수두룩한데 한마디씩만 해도 움츠러든다. ‘넌 방송국이 네 건 줄 아냐. 왜 너의 생각을 집어넣어’라고 말하면 피디가 무슨 민주투사도 아니고 그냥 따르게 된다”고 말했다.

간부들의 ‘은밀한 한마디’는 아무 때나 나오지 않는다. 예능 피디 ㄹ씨는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되는 소재를 다루면 뭔가 일이 생기곤 한다”고 말했다. 이번 메르스 건 역시, 박근혜 정부의 사실상 공인된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무능’을 다뤘기 때문에 탈이 났다는 것이다. 이 피디는 “풍자가 비교적 자유로웠던 노무현 정권 때도 아파트값 폭등에 대해선 그냥 넘어갔고, 김대중 정권 때도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요즘 개그 프로그램의 대세는 객석의 청중 앞에서 녹화를 하는 공개형이다. 과거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처럼 은유적인 분위기에선 객석 호응을 이끌기 어렵다. 돌직구형이 아니면 청중의 박수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 외압 논란이 있고 나면 간부들은 휘하 피디에게 이렇게 주문한다고 한다. ‘풍자는 은유적이어야 제맛이다. 은유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한 별칭도 없어 풍자가 더욱 쉽지 않다고 한다. 정치 풍자 코너를 오래 한 한 개그맨은 “김영삼은 와이에스, 김대중은 디제이, 노무현은 서민대통령 등 별칭이 있어 풍자도 쉬웠다. 박 대통령은 별칭도 없고, 특징이라 할 만한 요소가 대부분 좋지 않은 거라 은유적 풍자도 힘들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에 둔감한 일부 단체들의 성마른 목소리도 정치 풍자를 움츠러들게 한다. ㄱ 피디는 “인터넷이 생긴 뒤부터는 정치 권력의 외압보다는 민의의 외압이 더 커졌다. 일단 온라인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면 방송사 심의실에서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사과하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지상파 3사 개그 프로그램에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풍자해 징계를 받은 경우는 모두 4건이다. 개그맨 ㅁ씨는 “이명박 정권 때도 그랬지만, 박근혜 정권 때는 특히 더 권위적인 분위기라 알아서 조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ㄹ 피디는 “김영삼 정권 들어 정치 풍자 코너에 대해 유해졌고, 김대중·노무현 정권까지 이어지다가 이명박 정권부터 다시 팍팍해졌다”고 말했다. ㄱ 피디는 “간부가 불러서 애기하는 건 정권마다 다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등에서는 간부급에서 정치 풍자 코너에 대해 수위를 낮추라는 식의 얘기를 해도, 그걸 무시하고 내 의지대로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대통령이라도 집권 초엔 다소 관대한 편이다. “대선 때는 성대모사를 하면 오히려 화제가 되니 더 좋아한다. 집권 초에도 뭘 하더라도 특별한 제재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집권한 뒤 정권에 위기가 닥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간부들이 자꾸 부른다.” 예능 피디들이 공통적으로 털어놓은 얘기다.

정치 풍자를 시도하는 개그맨들의 고충도 크다. 개그맨 ㄴ씨는 “정치 풍자 코너를 한 이후 출연중이던 종편 프로그램에서 잘렸다”고 밝혔다. 이 개그맨은 “정치 풍자 코너에 출연하면 지자체나 정부 관련 행사가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뭐 하려고 이런 거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안 하게 된다”고 푸념했다.

그러나 정치 풍자 개그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관심도 있어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또 시원한 권력 풍자가 주는 쾌감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언제일지 모르는 그날을 위해 꾸준히 준비를 하고 있다. 개그맨 ㅁ씨는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야 한다는 식의 뻔한 풍자가 아니라, 그가 하는 일들을 세세하게 파헤쳐 옳고 그름을 토론해보는 속시원한 개그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낙관보다는 비관이 앞선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평생 못할 것 같아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 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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