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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스위스 "40년 전부터 방사성 폐기물 처리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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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신뢰가 핵심…끊임 없이 소통하고 설득해야"

원전정책 선봉 나그라…알프스 암반 속 연구전초 '그림젤 연구소'

연합뉴스

(그림젤<스위스 베른>=연합뉴스) 이봉준 기자 = 스위스는 원자력발전소 5기를 운영하는 발전량 기준 세계 16위 원전 발전국이다.

국가 전체 전력 수요의 38%를 점할 만큼 원자력은 스위스의 주요 에너지원 중 하나이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준비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철저해 원전 발전 시작 직후인 1972년부터 진행해 왔다.

특히 국가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관인 '나그라(NAGRA)'는 원전과 병원 등지에서 나오는 고준위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후보지를 정부에 추천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나그라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용후 핵연료 영구 처리장 부지 선정을 위해 스위스 전역에서 지질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찾은 나그라의 지하 연구시설인 '그림젤 연구소(GTS)'는 원전 폐기물을 영구 처분할 장소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스위스 원전 분야의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꼽힌다.

잉고 블레쉬미트 GTS 소장은 "스위스는 1969년 첫 원전 가동 직후인 1972년 나그라를 출범시킨 이래 가장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는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건설에 대한 과정을 차근차근 진행시켜 왔다"고 강조했다.

방사성 폐기물은 오염 수준에 따라 '중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로 구분되며, 고준위 폐기물의 경우 지하 600m 이상 내려가야 안전하게 격리할 수 있다고 블레쉬미트 소장은 설명했다.

◇ 원전 건설 직후부터 폐기물 영구 처분장 물색 = GTS는 원전 폐기물 처리방법과 장소 등을 연구하기 위해 스위스 수도 베른시 남동쪽 120km 지점인 구타넨 마을에 들어섰다. 현지 주민들은 지역을 '그림젤'이라고 불러 GTS란 이름이 탄생했다.

원전 폐기물 연구 시설이 들어선 이곳은 아레(Aare)산맥 정상(해발 1천600m)에서 약 500m 내려온 산 중턱(해발 1천100m) 바위 속에 위치했다.

이곳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바위산 입구에서 약 1km 길이의 굴로 들어가야 한다. 산이 온통 화강암반으로 이뤄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등을 연구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1982년 나그라는 이곳에 지하 동굴 연구시설을 건설해 방사성 물질 처리 연구를 진행해 왔다. 대부분 나라가 그저 원전을 짓는데 급급했던 것과 달리 스위스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까지 철저히 준비해 온 것이다.

이곳에서는 중저준위 및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방안 외에도 다양한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건설·운영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 공동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돼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스웨덴, 독일, 일본, 영국, 스위스, 대만, 체코, 미국 등지의 대학과 연구소 및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 사용후 핵연료 처리는 "안전이 최우선" = 스위스 정부와 나그라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와 관련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안전을 강조한다.

'온통 화강암으로 이뤄진 GTS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최종 처리장을 설치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블레쉬미트 소장은 "6만년쯤 후에 알프스 지역에 빙하시대가 다시 도래해 빙하가 산을 깎고 지나가면 지금 수백m 암반 속에 매몰한 방사성 폐기물이 지면 위로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 최대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다른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실제 GTS가 위치한 알프스 산맥은 아직도 조산활동이 활발해 매년 지면이 수㎜씩 융기하거나 침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짧은 기간의 안전만 생각하지 않고 수만년 뒤 후손들의 안전까지 철저히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블레쉬미트 소장은 "현재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사소한 것들도 후손들에게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완벽한 안전을 입증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야말로 나그라와 GTS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 영구 처분장 후보지 두 곳으로 압축...40년 이상 신중한 논의·연구과정 거쳐 = 나그라는 지난 2011년 1차로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분장 후보지로 6곳을 선정한 데 이어 현재는 2곳으로 후보지를 압축해 놓은 상태다. 취리히 노르드 오스트(Zurich Nordost)와 주라 오스트(Jura Ost)가 바로 그곳이다.

GTS가 소속된 나그라는 ▲ 지질학적 안전성 ▲ 암반 생성 환경 ▲ 장기적 안전성 여부 ▲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건설 적합도 등 4개 요인을 토대로 후보지를 선정했다.

나그라 관계자는 "후보지 선정 작업은 정부나 각종 단체의 압력 없이 순수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블레쉬미트 소장은 "국토 전역을 대상으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를 6개로 압축하는 데만 8년이 걸렸다"며 "이 역시 나그라의 40년 이상의 노력과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나그라는 1900년대 초부터 작성된 지질학계 및 연구소의 데이터를 기관 출범 때부터 분석했으며, 100여명의 연구인력을 동원해 직접 조사도 진행해 왔다.

스위스의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최종 후보지 1곳이 결정되기까지는 지금부터 다시 1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 처분장 결정을 위한 국민투표는 2027년께나 가능할 것으로 나그라는 예상하고 있다.

◇ "국민에 믿음주는 정책과 끊임없는 설득이 관건" = 스위스 정부는 4년 뒤 고준위 폐기물 최종 처분장을 결정할 방침이다.

나그라는 최종 부지 선정을 앞두고 각 지자체 및 주민들의 대표하는 시민단체 등과 충분한 의견 교환을 하고 있다.

기술적, 지질학적, 과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중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최종 선정 부지에 대한 주민투표에서 반대가 나올 수도 있다. 나그라는 이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끝까지 설명하고 설득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블레쉬미트 소장은 "원전 부지 선정에 있어 해당 지역의 반대 의견은 과학적으로 틀린 것이 아닌, 혐오시설에 대한 반대"라며 "따라서 주민 설득 작업을 끊임없이 진행해 마침내 이해하고 협력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설득하는 과정은 주민투표 등을 통해 스위스 정부가 담당하게 된다.

스위스의 이같은 결정 과정은 원전 부지나 폐기물 처분장 건설 등을 놓고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 운영주체, 이익집단 등이 나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관련 기관들이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고, 정부가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신뢰를 주면서 설득하는 스위스의 원전 정책 결정 과정은 우리나라의 원전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j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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