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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격변의 금융권> ② 족쇄 풀린 계좌…빅뱅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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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예금 226조, 더 나은 서비스로 '이동 준비'

10월부터 자동이체 통합관리시스템 본격 시행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송광호 = 연금저축 계좌가 있는 50대 직장인 A씨는 수익률이 늘 불만이었다. 지금은 세제혜택에 만족하고 있지만 노후 자금이 턱없이 모자랄 것이라는 걱정에서다.

그러던 차에 A씨는 계좌를 쉽게 옮길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된다는 소식을 듣고 최근 좀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해 볼만한 금융사로 계좌를 옮겼다.

'연금저축계좌 이체 간소화 방안'이 지난 4월27일 시행된 이후 나타난 변화다.

종전에는 연금저축계좌를 다른 금융기관으로 옮기려면 원하는 금융사를 찾아 계좌를 열고 기존 계좌가 있던 금융사를 방문해 이전신청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이젠 계좌를 넘겨받을 금융사만 방문하면 이전이 가능해졌다.

B증권사는 이체간소화 이후 타사에서 옮겨온 계좌가 2천 개에 육박한다고 했다. 전체 계좌 수의 8%에 육박할 정도다. 보험, 은행, 증권사에 걸친 연금저축 시장은 100조원 안팎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도 시행 이후 계좌 이전이 활성화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제도의 작은 변화가 소비자의 행동을 자극하고 업계의 고객 유치전에 불을 붙인 사례다.

이보다 훨씬 파급력이 강할 수 있는 변화도 임박했다.

이른바 계좌이동제도로 불리는 '자동이체 통합관리시스템'이 몰고올 변화다.

지난 1일부터 자동납부 조회·해지에 이어 오는 10월부터 계좌 변경 서비스가 시작된다.

계좌이동제는 고객이 은행 주거래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기면 기존 계좌에 연결된 공과금 이체, 급여 이체 등이 별도 신청 없이 자동 이전되는 시스템이다.

계좌에 줄줄이 물려 있는 자동이체 때문에 은행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주거래은행이 성에 차지 않으면 서비스 좋은 다른 은행으로 쉽게 갈아탈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10월부터 나타날 변화의 세기는 '빅뱅' 수준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자동이체 등록이 가능한 수시입출금식 예금의 잔액은 개인예금 226조3천억원, 법인예금 192조8천억원이다. 총예금(1천92조5천억원)의 각각 20.7%, 17.6%에 달한다.

은행 간 예금 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 이런 제도가 시행된 후 고객 이탈이 급증했던 해외 대형은행 사례도 있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은행들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은행들은 주거래 고객 선정기준을 낮추고 우대 혜택의 범위를 관계사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리은행[000030]은 지난 3월 '우리 주거래 패키지'를 출시하며 선제 대응에 나섰다.

입출식 통장·신용카드·신용대출을 묶어 주거래고객에 대한 혜택을 늘리고 까다로운 조건을 단순화한 이 상품은 출시 3개월 만에 10만계좌·1조원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4대 연금수급자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장·카드·대출 패키지 상품도 출시, 연금저축계좌 이동 간소화에도 대비하고 있다.

NH농협은행도 은행·보험·증권 거래에 대한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NH올원카드'를 출시했다.

만기가 긴 상품을 통해 장기고객을 유치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기업은행[024110]은 지난 3월 최장 21년인 'IBK 평생든든자유적금'을 출시했고, 국민은행도 최대 10년까지 가입할 수 있는 'KB Hi Story 정기예금'을 선보였다.

각종 태스크포스(TF)를 통한 연구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국민은행은 계좌이동제 관련해 2월부터 10개 내외의 유관부서로 비상설 협의회를 구성, 대응방안을 모색 중이다.

금리와 수수료 인하 등 은행 간 유혈경쟁은 피하면서 상품 개발, 제휴 서비스 확대, 개인자산관리서비스 개선 등을 통해 고객 유치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농협은행은 TF를 통해 고객 유치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볼 때 계좌이동의 가장 큰 원인은 서비스 불만에 있었다"며 "단순히 수수료 할인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근본적인 고객서비스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상품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이 예고돼 있다.

예적금, 펀드, 연금처럼 지금까지는 개별적으로 투자하던 상품을 하나의 계좌에 담는 한국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Individual Savings Account)가 그것이다.

내달 세법 개정안 발표 때 세부방안이 나올 예정이어서 가입자격, 운영방법 등이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세제혜택을 탑재하는 강력한 상품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성격에 비춰 은행에 국한하지 않고 금융권 전반에 도입될 경우 업권 내, 업권 간 경쟁을 촉발해 여윳돈을 빨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입자격이 중산층으로 확대되면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고객유치 전략을 짤 계획"이라고 말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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