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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배신 트라우마 → 국정 파행 → 협량 정치… 박 대통령 ‘속 좁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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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다”… ‘찍은 자’에 용서 없고, ‘다른 의견’ 용납 안 해… 결국은 불통·인사 실패 ‘난맥’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은 악몽처럼 따라붙는 굴레다. 정치학자는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이 ‘박근혜의 삶과 정치’를 풀어낼 때 열쇳말로 삼는 단어다. ‘트라우마’라는 말이 따라붙을 만큼 그의 언행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일갈한 이후 ‘배신 트라우마’는 새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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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국정 마비 상태 9일째를 맞는 3일에도 대통령의 성난 마음은 풀리지 않은 듯하다. 좀체 용서도, 후퇴도 없는 ‘배신에 대한 심판’은 박 대통령 정치의 어두운 부분인 ‘협량(狹量·좁은 도량) 본색’을 상징한다.

실제 가장 믿었던 측근의 배신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그 후에도 많은 주변 사람들이 등 돌리는 것을 목도했던 박 대통령에게 배신 트라우마는 떨칠 수 없는 천형(天刑)과도 같은 것일 게다.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그간 출간된 박 대통령 일기와 자서전 곳곳엔 배신에 대한 쓰라림이 녹아 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개인적 배신 경험이 그의 정치와 국정 영역까지 침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회법 개정안’ 파동 내내 정국을 뒤흔든 박 대통령의 ‘협량 정치’가 배신 트라우마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한다. 박 대통령은 배신의 기억을 반면교사 삼아 ‘신뢰가 최우선’임을 강조해 왔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다른 의견에 대한 ‘무관용·불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의견=배신’이란 자신만의 프레임 속에서 ‘배신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속 좁음으로만 박 대통령 통치가 침몰해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뜻을 거스른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내달라’고 여론을 향해 호소한 것이 단적인 예다.

청와대의 협량 본색은 국회법 정국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힘을 모아야 할 상황에서도 청와대는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여는 것조차 거부했다. 외교결례로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이 2일 ‘믹타(MIKTA·중견국 협의체) 5개국 국회의장 회의’ 국회의장단을 접견하면서 정작 주최 당사자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배제했다. 정 의장이 국회법 개정안 위헌성에 대통령과 다른 견해를 내놓은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협량 정치와 배신 트라우마는 국정 난맥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청와대가 다른 의견에 관용하지 않으면서 널리 인재를 구하는 것은 애초 불능이다. 인사 실패는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발탁된 장관·참모는 청와대 지시만 기다리는 ‘복지부동 공복’이 되면서 세월호 등 위기 때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무능한 보수정권’ 프레임은 이제 여론 속에서 콘크리트처럼 굳어졌다. 이 때문에 ‘배신 트라우마→협량 정치→국정 무능’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남은 절반의 국정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용욱 기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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