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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영화人②]신유경 대표 “개봉 눈치싸움? 과거엔 개봉일 사수가 일종의 자존심이었는데”(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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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

[텐아시아=정시우 기자]한번 보면 쉽게 잊혀지는 얼굴이 아니다. 포스가 넘친다. 마케터들의 든든한 왕언니다. 누군가는 또 ‘영화홍보계의 마녀’라고도 했다. 신유경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영화 홍보라는 것이 “신문에 조그마하게 공고 형식으로 내는 게 전부”였던 시절, ‘영화인’이라는 전문홍보사를 차린 신유경 대표는 1999년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영화들로 관객들을 유혹하고 유인해 왔다. 그 중엔 ‘왕의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해운대’ ‘아바타’ 등 천만관객을 매료시킨 작품도 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처럼 디즈니가 득세했던 애니메이션 시장에 파문을 던진 작품도 있다. 영화 흐름이 바뀌는 주요 길목 길목에 그녀가 있었던 셈이다.

최근 영화 ‘극비수사’에 애기무당으로 출연, 영화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그녀는 영화마케팅사협회(Korean Film Marketers Association, KFMA) 초대 회장으로서의 중책도 맡고 있다. 2013년 5월 30일 발족한 KFMA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화마케터들의 업무환경 및 처우 개선 등을 위해 달려왔다. ‘극비수사’를 매개로 만나 KFMA의 지난 2년간의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Q. 하나의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홍보마케터가 해야 하는 일은 굉장히 많다. 캐스팅 보도자료 작성부터 기획, 제작보고회, 쇼케이스, 배급 시사회, 배우 인터뷰, 지방 무대인사 진행 등등. 어떤 과정에 가장 신경을 쓰는 편인가.
신유경:
초기 ‘콘셉트’ 잡는 게 마케팅의 반이라고 생각한다. 이후의 여러 과정들이 수월하려면 처음 콘셉트를 잘 잡아야 한다. 콘셉트를 잘못 잡아놓고 일을 하면 모든 게 ‘허당’이 될 수 있으니까. 설계도를 잘 세워야 튼튼한 집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초기 콘셉트 잡는 게 가장 힘들지만, 또 가장 재미있다.

Q. 그렇다면,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 콘셉트, 정말 잘 잡았다’ 싶은 건.
신유경:
근 1-2년 작품 중에서는 ‘친구2’. 개봉 전에 말들이 많은 영화였다. ‘왜 이걸 또 만드냐’부터 ‘다 끝난 거 아니냐’ 등등.(웃음) 그래서 관객 설문을 굉장히 많이 했다. 많은 분들이 가장 궁금해 한 건 “준석(유호성)이 정말 동수(장동건)를 죽이라고 한 거야?”였다. 그래서 콘셉트를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날의 이야기’로 잡고 마케팅을 풀어갔다. 사실 창작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관객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영화가 보다 많은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중간 브릿지가 필요한 이유다. 마케터는 시장에서 잘 먹히는 핵심 코드를 끄집어내야 한다. ‘관객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던져주는 게 마케팅’이지,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만 주구장창 하는 건 마케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랬을 때 ‘친구2’는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주는 동시에 감독이 말하고 싶은 본질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콘셉트였다고 본다.

Q. 작품 의뢰가 동시에 들어오기도 할 텐데, 그럴 때 작품 선택의 기준은 뭔가.
신유경:
기준은, 무조건 먼저 들어온 영화!(웃음) 거기에 어떤 기준을 세우기 시작하면 관계에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변수는 있다. 영화 개봉 일정이 변동됐을 때다. 가령 2013년 추석에 개봉한 ‘관상’(송강호 이정재 주연)과 ‘스파이’(설경구 문소리 주연)는 원래 우리가 모두 홍보하기로 했던 작품이다. ‘관상’은 계약 때부터 추석 개봉이 예정돼 있었고, ‘스파이’는 그 해 1월해 개봉하려다가 내부 문제로 추석으로 옮겨졌다. 홍보해야 할 영화가 겹치게 된 거다. 그럴 때는 개봉일을 바꾸지 않은 영화를 우선으로 한다. ‘관상’만 홍보하게 된 이유다.

Q. 회사 계획을 1년 단위로 크게 짜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엔 개봉 시기에 돌발변수가 너무 많으니 말이다. 주연 배우가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거나, 영화가 정치적인 논란에 휩싸여 개봉이 미뤄지기도 하지 않나.
신유경:
연초에 라인업을 짜긴 한다. 그런데 연말에 돌아보면 반은 계획대로 개봉했고, 반은 뒤죽박죽이다. 원래대로 개봉하는 영화의 70프로는 또 직배사 영화들이고. 요즘 한국 영화들은 배급 전략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봉시일을 대충 정한다. ‘상반기 개봉’, ‘여름 시장 개봉’, ‘하반기 개봉’ 이런 식이다. 옛날에는 기존에 정한 개봉일을 지켜서 가는 게 일종의 자존심이었는데, 이젠 보기 힘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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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마케팅협회

Q. 개봉 눈치작전이 갈수록 심해지는 분위기다. 홍보사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난처할 테다.
신유경:
우리처럼 팀이 나뉘어져 있어서 여러 영화가 함께 돌아가는 곳은 그나마 낫다. 홍보를 ‘원 바이 원’으로 하는 회사들의 경우엔, 개봉일이 밀리거나 겹치면 치명타다. 단순히 일이 밀리는 게 아니라 매출자체가 없어지는 거니까. 그래서 한국영화마케팅협회 차원에서 ‘기회상실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하는 중이다. “당신들 영화를 가지고 있다가 개봉을 못해서 매출이 없어졌다. 기회 손실에 대한 귀책사유가 있는 쪽에서 보상을 해줘야 하지 않냐”는 얘기를 하는 거다. 투자배급 쪽에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조금씩 인식을 하는 분위기다.

Q. 한국영화마케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13년 창립 당시 협회 소속 마케터들의 ‘업무 환경 개선’과 ‘자긍심 고취’ 두 가지 사항을 강조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중간 평가를 해 본다면.
신유경:
업무환경이 열악한 것 중 하나가 소위 말하는 갑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인데, 그 부분은 조금 나아진 것 같다. 그들도 이젠 어느 정도 협회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가령 홍보사가 할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넘어오는 업무들이 있다. 누구의 일인지 불분명할 일일수록 마케팅사가 떠안아 왔다. 협회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A 회사는 하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 식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엔 홍보사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부당한 일이 오면 협회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한다. 협의 논의를 거쳐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며 “협회차원에서 안 하기로 했다” 함께 움직이는 거다.

Q. 연대의 힘이란 역시.
신유경:
서로, 약간의 비빌 언덕이 생긴 거다. 협회가 생긴 이후에는 영화사-배급사 등에서 업무를 의뢰할 때도 이전보다 훨씬 더 정중하게 한다. 상명하달식이 아니라 조금 더 예의를 갖춰서 대하는 느낌이 든다. 안 해도 될 일을 약자라는 이유로 떠맡는 것도 많이 사라져다.

Q. 최근 협회가 적극적으로 돌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시사회 등의 영화 행사다. 무분별한 위조, 사칭, 양도 등을 근절하기 위해 ‘영화 행사 출입매체 가이드’를 시행하고 있는데.
신유경:
언젠가부터 언론시사회라는 게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행사가 돼 버렸다. 기자를 사칭하는 사람이 많다. 기자 분들이 친구를 데려와서 영화를 보여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언론시사회가 그럴 행사는 아니지 않나. 완성된 영화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공식적인 자리이니 말이다. 그리고 똑같은 기사에 자극적인 이름을 달아서 올리고 또 올리는 유령의 어뷰징 매체들. 어떤 매체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리뷰는 물론 취재한 기사가 하나도 없다. 영화섹션 하나 만들어 놓고 보도메일을 긁어서 올리는 수준이다. 이런 사람들이 매체라고 하며 살고 있다는 것에 우리가 너무 무신경했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시사회 표를 파는 경우도 있는데, 그 사람들 장사를 위해 우리가 계속 시사회 문을 열어 둘 수만은 없지 않나.

Q 참석 가이드 시행으로 인한 잡음도 없지 않다. 언론탄압이라며 1위 시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유경:
그래서 우리도 이번에 자문 변호사를 뒀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언론탄압이라는 것이 뭘 못쓰게 하는 식인데, 이 경우는 아니라고 하더라. 오히려 행사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업무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연대를 통해 영화사-배급사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1년 차 때 집중한 일이라면, 2년차 때는 언론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합리한 것들을 조절하려고 했다. ‘협회가 힘을 가지려 한다’고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들어올 수 있는 매체/없는 매체를 우리가 마음대로 거르겠어!’는 절대 아니다. 그랬다면 제한 규정을 보다 엄격하게 좁혔을 거다. 지금은 안 되는 사유가 있거나 문제를 발생시킨 사례가 있는 매체들을 우선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Q. 일명, ‘찍덕’(직접 스타의 사진/영상을 찍는 팬)들이 사진기자를 사칭해 물의를 일으킨 일도 많은 걸로 안다.
신유경:
그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너무 거르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기자라며 명함을 가지고 오는 분들이 있는데 그들이 진짜 시민기자인지, 파파라치인지를 현장에서 바로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 그로 인해 진짜 기자들과 잡음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거다. 이번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몇 개나 되는 곳에 영화 메일링이 되고 있냐”고 온라인 사에 물어봤더니, 발송 메일주소가 2000개가 넘는다는 다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오랜 시간 메일 삭제는 안 하고, 누가 메일 보내 달라고 하면 추가만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다. 가령 매체에 기고를 하다가 그만 둔 분들의 경우 메일링 리스트에서 빼는 게 맞다. 그런데도 그냥 두다보니 매체와 무관한 분들이 와서 영화만 보고 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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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협회의 3년차 목표는 뭔가.
신유경:
세 번째는 회원들의 복지 향상이다. 강의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서 회원들이 자기 개발을 할 수 있게끔 도울 생각이다. 사실 이건 원년부터 하려고 했던 건데, 다들 너무 바쁘다보니 미뤄졌다.

Q. 가시적인 결과물들이 확실히 보이는 것 같다.
신유경: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마음먹은 건 빨리 빨리 해야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건 빨리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웃음)

Q. 영화홍보사는 을의 위치에 놓일 때가 많다. 투자배급사, 제작사, 배우, 관객, 하물며 기자와의 관계에서도. 여러 분야의 ‘갑질’ 중 어떤 ‘갑질’이 가장 힘든가.(웃음)
신유경:
하하하. 그거 참 자웅을 가리기 쉽지 않다. 영화사들이야 영화를 주는 입장이니까 ‘말 안 들으면’ 식의 ‘갑질’이 있을 수 있겠지. 매니지먼트와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배우들 심기 건드려서 좋을 게 하나 없다. 누가 이길지 뻔한 게임이니까. 기자들도 마음에 안 들면 리뷰로 ‘빈약한 스토리에 볼거리 없고 시간이 아깝다’라고 딱 써 버리시니.(웃음) 정말이지, 어떤 것 하나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없다.

Q. 한국영화마케팅협회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을 테다.
신유경:
맞다. 협회에서 여러 활동을 하다보면 마케팅사의 위상이 조금은 더 자리를 잡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우리들도 상대의 일을 이해하지 못해서 오해를 품곤 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너희들, 기자나 매니저들 만나면 영화 이야기만 하지 말고 그들의 24시간을 들어봐라. 그럼 그들은 또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될 거다”라고 말한다. 안다고 해서 그들의 말을 다 들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해하고 듣는 것과 이해 못하고 듣는 것은 천지차이니까. 상생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Q. ‘극비수사’ 김중산(유해진) 도사가 자신의 일에 있어 중요시 하는 것은 ‘소신’이다. 신유경 대표에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신유경:
마케팅을 할 때 ‘영화의 본질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지 말자’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마케팅이라는 게 사기예술 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에 너무 순진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본질은 헤치지 말아야 한다고 항상 다짐한다. 또 하나 언급하자면, 예의. 뭐든 예의를 갖춰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

[영화人①] 신유경, 홍보사 대표가 ‘극비수사’에 출연한 까닭(인터뷰)

정시우 siwoorain@
사진. 구혜정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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