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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평론가·편집자와 소통 않는 작가가 신경숙 사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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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 4. 한국문학 추락, 소통 않는 작가도 문제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유명 소설가 신경숙 표절 논란이 한국문학이라는 체제 전체의 작동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며, '누가 한국문학을 죽인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에 한국문학이 처한 것은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문단의 일각에선 "문학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었다"면서 "한국문학의 건강함을 위해 신경숙 아닌 다수의 다른 에이스를 발굴하고 육성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뉴스1의 기획시리즈 [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는 다섯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대표 작가 신경숙의 표절이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한국문학 생산 시스템의 문제점들을 짚어볼 예정이다.

한국문학 추락의 원인은 자본의 논리에만 충실하게 복무한 대형출판사,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문학이 아닌 책상에서 이뤄지는 문학과 문학인을 양성해낸 대학 문예창작과, '돈이 안 된다'며 문학과 책 소개 지면을 줄이고 주례사 비평에 동참한 언론들로 압축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과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비평과 독자와의 소통에 주저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문학인들, 책 한 권 사보는 데 인색했으면서도 갖은 비난의 말을 쏟아내는 누리꾼들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로운 문학에이스를 위해] 시리즈는 검토와 비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건강한 대안과 개혁의 방법을 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뉴스1

6월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 공동주최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가 열렸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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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권력'된 출판사들, 개혁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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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의혹'…"'문학권력'된 출판사 책임 크다"

"비평은 기본적으로 작품의 문제점을 짚어내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곧이곧대로 했다가 작가와 '척을 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한 평론가는 작품을 비판적으로 비평했다가 A작가에게선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지만 B작가와는 관계가 소원해져버린 경험을 이야기했다. 냉랭해지는 것은 작가와의 사이 뿐이 아니다. 그는 "출판사가 밀고 있는 소위 '뜨는' 작가를 세게 비판하면 출판사와도 서먹해집니다"라고 덧붙였다.

신경숙 작가는 지난달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0년에 '전설'이 '우국'을 표절했다는 문제를 제기한 정문순 씨의 평론을 읽지 않았다고 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는 너무나 여러 가지 것으로 공격을 받고 있던 때라서 정말 어떤 글도 읽지 않았어요. 읽으면 너무 아프고 글을 못 쓸 것 같았으니까.(중략)내가 나에 대한 비판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았고 못 읽어요. (비판이) 아주 많아요. 어떻게 읽겠어요. 그걸 읽고 감당할 자신이 없고, 기분만 나빠지고, 어떤 글은 뼛속까지 속이 상하는데요.”

'비평'을 의미하는 영어 '크리티시즘'(criticism)은 그리스어 '크리티코스'(Kritikos)에서 왔다. 이는 '구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이란 뜻으로, 비평이 창작물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판단하는 예술이란 것으로 해석된다. '상찬'의 말 뿐 아니라 따끔한 지적도 해야한다는 의미다. 또한 '창작'과 '비평'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선후와 중요도의 구별을 할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문학에서 간주된다.

2014년 문학 부문 퓰리처 상을 수상한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는 발간되자마자 "'황금방울새' 읽었어요?"가 그해 미국 칵테일 파티 참석자들의 인사였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수의 저명 평론가들은 "영광스런 디킨시언(찰스 디킨스 스타일) 작가…얼마나 높은 감정적 옥타브까지 올라갈 수 있는 지 보여주고, 즉각적인 손에 잡히는 감정과 넓은 폭의 의미를 천의무봉으로 결합시켰다"라는 소위 칭찬으로만 가득찬 '주례사 비평'을 내놨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 역시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똑똑하게 쓰여진 귀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뉴요커', '파리 리뷰' 등의 잡지의 일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의 의미와 성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뉴요커'의 제임스 우드 비평가는 "이 작품의 톤, 언어, 이야기는 아동문학에 속한다"는 혹평을 날렸다. 구성이 너무 뜬금없고 심각한 작품이라는 것을 간청하듯 막판에 과도하게 메시지를 욱여넣었다는 것이다. '황금방울새'가 퓰리처 상을 받은 다음에도 그는 "어른들이 '해리 포터'를 읽으며 돌아다니는 문학판의 '어린이화'가 더 심해졌다는 증거일 뿐"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영국의 비평가 겸 소설가인 토머스 드 퀸시의 정의에 의하면 창작은 '힘의 문학', 비평은 '지식의 문학'이다. 독자를 압도시키는 창작물이 갖는 강력한 힘이라도 비평이라는 지식을 통해 절제되고 균형점을 잡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비평에 귀를 열지 않는 작가들, 출판자본과 작가와의 관계 등의 눈치를 본 평론가들은 긴밀해야 할 '창작과 평론'의 관계를 소원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한국문학의 위기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

글쓰기 블로그를 운영하는 미국 작가 제프 고인스는 블로그에서 "좋은 작가와 나쁜 작가의 차이점은 글쓰기 기술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만족스런 글을 얻기 위한 끈기와 비판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고맙다'고 말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작가가 좋은 작가라고 지적했다. 좋은 작가는 내부와 외부의 목소리 모두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개선시킨다는 것이다. 반면 그는 나쁜 작가는 "자신들의 작품이 어떤 특출한 수준을 성취했다고 보고 편집이나 리라이팅에 마음을 닫아버리는 이들"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이들은 오만하고 자부심 강해 보이지만 사실상 이들의 문제는 게으름과, 글을 고쳤다가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공포심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천재'라는 신화에 자신을 내맡긴다. 작가들에게 어떻게 하면 당신 글을 더 좋게 만들지 얘기하면 그들은 방어적이 되거나 다시는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피드백을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 그 말이 진심이었던 적은 흔치 않았다"고 말한다.

'뉴요커'의 편집자 가드너 보츠포드는 "나쁜 작가일수록 자신의 글이 편집되는 것에 더 크게 항의한다"고 말한다. 좋은 작가는 편집자들에 기대고, 편집자의 충고를 듣지만 나쁜 작가는 자신의 글자 하나라도 편집자들이 고칠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복거일은 1일 표절 사태에 대해 "신 씨의 문학적 게으름"이 이런 사태를 낳았다고 말하며 "누구도 표절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것(표절)을 걸러내는 것이 출판사 편집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작가가 비평가와 편집자와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표절을 막고 한국문학을 바로 세우는 하나의 방법이란 의미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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