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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곡물자급률 OECD 최하위권… 대책은 겉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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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등 켜진 ‘식량안보’

작년 자급률 24%… 34국 중 32위

2009년 이후 줄곧 20%대 머물러

쌀 제외 콩·밀 등 전량 수입 의존

목표치 오락가락… 주먹구구 대책

식량민족주의 파고… 위기감 커져

1980년 여름 냉해가 우리나라 농가를 강타했다. 그해 쌀 생산량은 355만t으로 전년의 3분의 2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정부는 당시 국제 곡물 유통회사와 협상을 통해 t당 500달러에 쌀을 사들였다. 이는 국제 시세의 2.5배에 이르는 가격이었다. 앞으로 기후변화가 심해져 식량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곡물 확보조차 힘들어질지 모를 일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과 강수량 증가 등 기후변화가 지금 속도로 진행된다고 가정하면 2050년 쌀 생산량은 181만t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쌀 생산량이 420여만t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에 연구원은 2010년 기준 83.1%인 쌀 자급률이 점점 낮아져 2040년 62.6%, 2050년 47.3%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적인 흉작이나 곡물가격 급등 등으로 곡물 파동은 더 잦아지고 파급력도 커지는 추세다. 과거 7∼10년 주기로 일어났던 세계 곡물파동은 최근 들어 기후변화 등으로 1∼3년으로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콩,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처지다. 자칫 기후 변화 등으로 곡물 생산에 피해가 커 곡물파동이 발생할 경우 우리는 식량 대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구나 바이오에너지 생산용 곡물 생산이 급증하고 있고, 중국, 인도 등 인구가 많은 나라들의 경제성장으로 식량 및 사료용 곡물 수요도 급격히 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식량안보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 정책이 식량위기를 헤쳐나가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일보

◆OECD 최하위권인 곡물자급률

2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지난해 2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중 32번째로 낮았다. 곡물자급률은 가축 사료용 소비를 포함한 국내 농산물 소비량 대비 국내 생산량 비율을 말한다. 호주의 곡물자급률은 229%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고, 캐나다(192%), 프랑스(181%) 등이 높았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1970년 80.0%에 달했지만 1980년 56%, 1990년 43.1%로 하락했고, 2009년 29.6%로 떨어진 뒤 20%대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기준 쌀 자급률은 95.7%였지만 보리(24.8%), 밀(0.7%), 옥수수(0.8%), 콩(11.3%) 등은 외국에서 수입을 하지 않고는 사실상 버틸 수가 없는 지경이다. 자급률이 낮다 보니 우리나라는 국제 곡물시장의 작은 변화에도 쉽게 흔들린다. 세계 각국에서는 식량난에 대비해 수출을 통제하는 식량민족주의가 갈수록 확산될 조짐이다. 식량안보는 우리의 생존이 걸린 화급한 과제라 할 만하다.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대책 펴야

식량안보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우리 정부대책은 지지부진하다.

식량안보의 기본인 자급률 목표치조차 불과 1, 2년 사이에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바뀌고 있다. 정부는 2011년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위한 장기 계획’을 발표하면서 2015년까지 곡물자급률을 30%로 높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2년 뒤인 2013년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식량안보 문제를 국정과제 중 하나로 추진하자 정권 말인 2017년까지 자급률을 30%로 높이겠다고 2년을 늦췄다. 그러더니 지난 3월 자급률 향상 대책을 발표하면서는 다시 2015년까지 자급률을 30%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목표 자체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 없다. 체계적이고 정교한 대책을 세워도 줄곧 하락하고 있는 자급률 추세를 반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주요 곡물 수급안정대책 중 하나로 우리 밀의 소비와 공급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우리 밀 소비 활성화 사업’도 2013년 시행됐지만 지난해 폐지됐다. 관련 부처 간 협의 부족 등으로 예산 집행률이 10%대에 머물고, 밀 생산마저 감소해 제대로 시행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농업 전문가는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특수성 등을 감안하면 갈수록 식량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농업에 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식량자급률이 거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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