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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유대인 669명 구한 ‘영국의 쉰들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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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 털어 위탁가정 찾아 체코수용소 어린이들 구해내

생전에 “쉰들러와 비교 안돼” 겸손

[동아일보]
동아일보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치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유대인 어린이 669명을 구한 ‘영국의 쉰들러’ 니컬러스 윈턴 경(사진)이 1일 별세했다. 향년 106세. 가족 측은 윈턴 경이 딸 바버라와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영국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윈턴 경은 런던에서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던 1938년 말 친구의 도움 요청을 받고 체코의 유대인 난민 수용소를 방문한다. 이곳에서 그는 전쟁 위기를 직감하고 나치의 눈을 피해 몰래 기차로 유대인 어린이들을 먼저 네덜란드로 보냈고 그곳에서 배 편으로 다시 영국으로 보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영국 신문에 광고를 내서 아이들을 돌봐줄 영국 위탁 가정을 찾았다. 필요한 서류가 충분치 못한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영국 세관당국도 설득했다.

이런 방식으로 그가 1939년 3월부터 8월까지 8차례 열차 편으로 영국으로 빼돌린 아이는 모두 669명. 그해 9월 1일 250명의 아이를 태운 9번째 열차는 프라하를 떠나지 못했다. 2차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그 열차에 탔던 아이들의 생사는 더이상 확인되지 않았다.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가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윈턴 경은 영국 공군에서 복무했다.

아이들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윈턴 경은 전쟁이 끝난 뒤 자신의 선행을 어디에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8년 아내 그레타가 다락방의 낡은 서류가방에서 윈턴의 일기, 아이들의 이름을 적은 명부, 아이들의 편지 등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때까지 그는 아내에게도 과거를 털어놓지 않았다.

윈턴 경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적절할 때 적절한 장소에 있었을 뿐”이라며 1100명의 유대인을 수용소에서 구출한 독일인 오스카어 쉰들러와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쉰들러처럼 목숨까지 걸고 모험을 한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영국 BBC는 “윈턴 경이 숨을 거둔 7월 1일은 그가 가장 많은 241명의 아이를 런던으로 구출한 날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트위터에 “수많은 아이를 홀로코스트(나치 대학살)에서 구한 윈턴 경의 인도주의를 잊어선 안 된다”며 조의를 표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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