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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 믿을 만한 정보 주는 게 정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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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메르스 사태’ 심리 방역이 없었다

한국 메르스 사태 이렇게 소통했어야

중앙일보

“우리는 아웃브레이크(질병의 발생 및 대유행)를 통제하는 데 큰 성공을 거뒀다. 아웃브레이크 통제에는 역학이나 실험 분석만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2004년 9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회의에서 이종욱 사무총장(2006년 타계)은 이같이 말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을 계기로 감염병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자리였다. 이 사무총장의 발언은 감염병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에게 전범으로 꼽힌다.

한국을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방역 실패의 요인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확진자 182명으로 세계 2위 감염국이 된 배경에는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실패가 있다.

감염병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페트라 딕만 영국 런던정경대(LSE) 연구교수에게 한국에서의 메르스 발병 이후 보건당국과 병원의 대중에 대한 소통을 평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요 발표와 조치를 일자별로 딕만 교수에게 제공한 뒤 e메일로 인터뷰했다.

-초기에 정부가 메르스 발생 병원 이름 공개를 거부했는데.

“극심한 공포를 피하기 위해 핵심 정보를 일부러 공개하지 않고 있을 때 역설적으로 공포와 불신이 생긴다. 정보의 확산 속도는 매우 빠르다. 대중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를 타고 소문은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공무원이 정보를 공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오히려 단순한 문제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서 병원 명단이 돌았다.

“사람들은 알고 싶은 정보를 결국 찾아낸다. 단순히 정보를 공개할 뿐 아니라 당국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왜 그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함으로써 ‘맥락이 있는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 더 나은, 더 믿을 만한 정보를 줘야 한다. 그래야 다른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당국의 정보에 의존하기로 마음먹는다. 정보는 중앙정부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정부 브리핑에 민간 전문가가 배석했는데.

“질병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별로 없을 때 외부에 자문하는 것은 지식의 외연을 넓히는 좋은 출발점이다. 다만 투명한 절차를 거쳐 임명해야 하고 그가 선택된 이유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 전문가가 병원에 소속된 의사인데 병원명 공개에 반대했다면 이는 ‘이해관계 충돌’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

-감염병 커뮤니케이션의 목표는 뭔가.

“감염병 발생은 의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경제·정치·국제관계·여론 등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목표는 조기에 신속하게 대응해 의료체계·무역·여행 등 다른 사회 시스템에 대한 충격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이때 격리 등 통제로 인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는 쪽과는 갈등을 빚을 수 있다. 불이익을 우려해 신고를 회피하기도 한다. 발병을 제대로 보고하고 감염 통제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인식을 넓히는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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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변화해야 할까.

“정보기술을 감염병 위기 관리에 활용할 수 있다. 서로 연결된 사회, 정보가 풍부한 사회는 감염병 발생 감시와 조기 발견,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보다 똑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보 공개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

“민주적인 정치 구조는 감염 통제에서 이점이 많다. 정부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투명성은 질병 확산 방지에 기여한다. 다만 두 기관 간 조율이 필요한데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질병 발생을 억제한다는 공동 목표를 위해 합의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정보를 공유하고 적시에 소통하고 포괄적으로 조율할 수 있도록 사전에 관계와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일부 지자체는 확진자 동선을 세세하게 공개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위험을 알게 됐을 때 걱정하고 당황해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낮은 수준의 정보가 위기감과 공포를 가져오고 높은 수준의 정보는 이성적이며 위기를 완화시키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정보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한국 정부는 메르스에 관한 정보 부족 사실을 나타내지 않으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알려지지 않은 질병을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대중도 이해할 것이다. 대중이 진정 싫어하는 것은 정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부분을 알고 어떤 점을 잘 모르는지 정직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차 감염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3차, 4차 감염까지 일어났는데.

“감염병 커뮤니케이션에는 확고한 원칙이 별로 없다. 유일한 한 가지는 ‘완전하게 배제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을 추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최적의 증거에 따르면’ 정도가 적절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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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원장은 “모든 노출자를 신속히 파악해 격리 조치했다”고 말했지만 이후 70여 명이 추가로 확진됐다.

“당국자는 늘 ‘모든’ ‘영원히’ ‘완전히’ 같은 단어를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상황이 통제됐다는 인상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염병은 서서히 전개되는 특성 때문에 종종 뜻밖의 뉴스가 나온다. 단정적 표현은 쓰지 않는 게 좋다.”

-수천 개 학교가 휴업했다가 WHO의 권고로 수업을 재개했는데.

“메르스 같은 사태에는 두 가지 전염병을 목격할 수 있다. 하나는 메르스라는 질병이고 다른 하나는 공포라는 전염병이다. 두 가지 전염병은 각각 올바른 감염 통제와 선제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 부모들의 걱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행동을 깎아내리기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식으로 상세하게 설명해야 정부 조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

-감염병 위기 소통의 잘된 사례는.

“서아프리카 에볼라 사태를 꼽을 수 있다. 감염병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지역사회와 협력하에 문화·사회·종교적 맥락과 관습을 반영해 개발해야 제대로 작동한다. ‘병든 사람에게 손대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은 가족이 서로 간병하는 아프리카 문화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가족을 간병할 때는 스스로를 보호하라. 외부의 도움을 받아라’가 낫다.”

-위기 커뮤니케이션 실패 사례는.

“‘왜’와 ‘어떻게’를 제시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조치를 지시하는 경우다. 전체 사실을 공개하지 않거나 상황을 은폐하는 등 대중의 신뢰를 잃을 만한 행동과 조치를 하는 것이다.”

-올바른 소통을 위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감염병 초기 대응은 늘 어렵다. 정부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높고 정보가 부족한데 대중은 정보 공개에 대한 욕구가 크다. 감염이 확산될 때 가장 좋은 위기 소통 전략은 질병 발생 이전에 준비한 연습에서 나온다. 병원·언론 등 이해당사자와 사전에 관계를 구축하고 연습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가치 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페트라 딕만=현직 의사이자 감염병·보건안보 분야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의대에서 ‘화학·생물·방사능·핵(CBRN) 위협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공부했고 생물보안과 문화정치학을 접목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연방 감염병예방연구소 를 거쳐 현재 영국 런던정경대(LSE) 연구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전염병-세계적 유행-공포(Plague-Pandemic-Panic)』(2011)가 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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