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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그리스 사태로 유럽의 꿈도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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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홍성완 기자 = "작금의 그리스 사태는 단지 현대국가로서 그리스의 실패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통합과 평화, 번영에 관한 유럽의 꿈이 좌절된 것이기도 하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국제문제 수석 칼럼니스트인 기드온 래치먼은 30일 "유럽의 꿈이 그리스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제하의 논평기사에서 "셧터문을 내린 그리스 은행들은 유럽연합(EU)의 심각한 실패를 보여준다"고 단언했다.

래치먼에 따르면 유럽은 지난 30년에 걸쳐 유럽판 '역사의 종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EU로 알려지게 됐다.

EU를 결성한 배경은 유럽 국가들이 전쟁과 파시즘, 점령의 비극을 과거로 돌리고 민주주의와 법치, 민족주의 배척에 기초해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데 있다.

그리스는 1974년 군사정권 붕괴와 함께 전국 차원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동시에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 유럽에서 새로운 모델의 선도자로 떠올랐다.

이어 1981년 열 번째로 EU 회원국이 됐다. EU의 현재 회원국이 28개란 사실을 고려하면 조기 가입한 셈이다.

이는 그리스가 항상 EU의 주변부 회원국이었다는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스에서 처음 수립된 유럽 통합으로 이뤄진 민주주의 공고화 모델은 그후 30년간에 걸쳐 유럽 대륙에 확산됐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970년대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뒤 1986년 EEC에 가입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대부분의 옛 소련권 국가들도 그리스 모델을 뒤따라 국내의 민주적 변화와 EU 가입을 연계시켰다.

EU 차원에서 그리스 모델은 안정과 민주주의를 유럽 대륙에 확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됐다.

한때 민주화로의 전환을 EU와 같은 유럽통합체제로 연계시키는 데 선도자 역할을 했던 그리스가 지금은 EU 분열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리스는 금융위기로 인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뒤이은 EU 탈퇴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스의 탈퇴가 현실화되면 EU 가입이 미래 번영과 안정에 대한 최상의 약속이라는 EU의 기본 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분노에 찬 빈곤한 그리스가 EU 우산 속에 남아있는다 해도 EU와 번영의 연결고리는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스 사태의 위험성은 그리스의 전략적 위치로 더욱 심각하다.

남쪽으로는 무정부 유혈사태에 빠진 리비아가, 북쪽에는 정정불안의 발칸반도 국가들, 동쪽에는 러시아가 있다.

이 때문에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그리스의 탈퇴를 방관하는 듯한 EU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일부 미 정부 인사들 시각으로는 유럽이 냉전시대에 배운 그리스의 전략적 중요성에 관한 교훈을 모두 망각한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미 정부의 비난에 대해 유럽 측의 반응은 EU는 내부 규율과 상호 의무를 준수해야만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리스와 같은 회원국이 규율의 의무를 어기고 채무를 상환하지 않는다면 EU는 분열 수순을 밟게 되기 때문에 차라리 그리스를 축출하는 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 낫다는 주장을 편다.

래치먼은 그리스가 7월 5일로 예정된 국민투표에서 EU 채권단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한다면 유로존과 EU 회원국으로 계속 잔류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이뤄지는 결정이고 EU에 대한 그리스의 꿈은 죽어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jami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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