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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취재파일] '정치적 동지'를 원했던 유승민의 항명은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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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박했지만 결론 없이 끝난 긴급최고위원회의

새누리당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루에 두 번 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일입니다. 그것도 발언 전체가 비공개인 경우는 19대 국회에서는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어제 오후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주제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는 주제 자체도 이례적이었지만, 기자들의 관심도 폭발적이었습니다. 대표방 복도에서 사람이 움직일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좁은 공간에 수백 명의 취재진이 몰려 있어서, 대다수의 기자들이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하염없이 뻗치기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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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 한번으로 자신의 거취를 정리할 거라고 예상한 기자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럴 거라면 지난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격한 발언을 쏟아낸 직후, 직을 내려놓는 게 더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예상대로 최고위원회의는 아무 결론 없이 상당수 최고위원들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것만 확인하고는 끝났습니다.

● 유승민 "사퇴 이유를 모르겠다"

언론에 공개된 부분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고위원들의 말을 경청했고, 잘 생각해보겠다"는 반응을 내놨다는 게 전부였습니다. 권투경기에서 난타전이 벌어졌는데 가드를 바짝 세우고는 '너는 때려라, 나는 버틴다'는 심정으로 그냥 받아들였던 겁니다. 오히려 일문일답에서 유 원내대표는 "최고위원마다 의견이 달랐다"며 전부 사퇴를 요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핵심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유승민 원내대표의 속내가 담긴 발언이었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물러나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거취 문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정할 게 아니다"며 사퇴를 요구하는 최고위원들을 머쓱하게 만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최고위원들의 말을 경청하기는 했지만, 물러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항변한 겁니다. 이쯤 되면 하고 싶은 얘기는 뼈 있게 한 셈입니다.

● "유승민 원내대표가 못 물러나는 이유는 대통령 발언에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 원내지도부에 속한 의원들은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개인의 문제로 대통령과 충돌했다면 당연히 물러나는 게 맞지만,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구조적인 문제로 일이 커졌다는 겁니다. 그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5일 국무회의 발언을 얘기합니다.

박 대통령은 "정치는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국민들께서 선거에서 잘 선택해 주셔야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 주변의 비박계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을 정계 개편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유승민 원내대표를 흔들어서 사퇴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친박계 의원들로 여당의 주류를 바꿔야한다는 의미라는 겁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낙마시키면 김무성 대표 체제는 금방 무력화시킬 수 있고, 내년 선거에서 친박 진영이 공천에 대한 지분을 얻어내기 쉽다는 분석입니다. 결국 박근혜 키즈들로 국회를 다시 채우려 할 것이며, 이는 대통령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상당수 현역 의원들에게는 중대한 위협이라는 겁니다.

● 유승민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하고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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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원내대표는 친박 진영에 속했던 인물 가운데 대통령과 관계 설정을 조금 독특하게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할 때도 주군을 모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때 두 번 거절하고 세 번째 제의가 왔을 때 하겠다고 했다. 단, 조건이 있다고 했다. '내가 대선(이회창 후보)에 지고 나서 후회가 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제대로 건의를 못 했습니다. 비서실장을 하더라도 할 말은 다 해도 되겠습니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할 말은 다했다. 지금도 나는 박 전 대표와 나의 관계가 상하, 주종,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라고 절대 생각 안 한다. 정치권에서 '동지'라는 말은 뜻을 같이한다는 것인데 그런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했고 도와드렸다. 지금도 필요하다고 하면 어드바이스한다."

<2012년 7월 13일 매일신문 인터뷰>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정치적인 목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대통령을 주군으로 모셨다면 자신의 앞에 놓인 사약을 털어 넣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치적 동지의 변심을 그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 전체를 부정하면서 배신의 정치라는 낙인을 찍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 원내대표 주변 인사들은 어려운 대야 협상에서 일정 성과를 얻은 부분에 대해 '상을 받으면 받았지 왜 벌을 받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가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대통령의 뜻과는 정반대의 항명을 하고 있는 겁니다.

● 탈당을 부르는 판도라의 상자 '의원총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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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의 거취 문제에 언급을 피하면서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친박 진영이 쓸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다시 직접 유 원내대표를 거론하며 공격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이미 격한 어조로 보여줄 만큼 보여준 상황에서 또 다른 메시지를 내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칫 다시 강경한 메시지를 내놨다가 노여워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만 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친박 의원들의 여론전도 어느 순간 국민들에게 피로감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맞장구를 쳐줘야 싸움이 되는데 그가 철저하게 충돌을 피해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 스스로 결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남은 카드는 새누리당 의원총회 정도입니다. 이미 새누리당 의원들은 비박의 아이콘인 유승민 원내대표를 자기 손으로 뽑았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 직후에도 유 원내대표에게 기회를 다시 주기도 했습니다. 친박 의원들은 단단하게 결집했지만 많지 않고, 비박계 의원들은 느슨하지만 숫자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원총회가 열린다면 어느 쪽도 승부를 섣불리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친박 진영에서는 유승민 원내대표를 확실하게 불신임하지 못하게 되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게 됩니다. 이미 대통령의 파문을 받은 유승민 원내대표를 여당 의원들이 재신임하게 되면 거꾸로 대통령과는 함께 가지 못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당 내부에서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아무도 열고 싶어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 김무성 대표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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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표현되곤 합니다. 한때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지만, 지금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비박의 주자로 당권을 분점하고 있습니다. 원내대표 거취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한다면 김 대표의 정치력은 더욱 빛나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김 대표도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어제(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김 대표의 입장에 대한 설전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대표의 발언이 조금씩 청와대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놨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당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국민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내분 사태는 과연 어떻게 정리될지 궁금해집니다.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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