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국고보조금이 털리고 있다] [1] 버스 運行 안한 '유령 노선' 회사, 적발됐는데도 계속 보조금 받아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준공영제 버스 보조금 횡령 사례]

非수익 노선 인가 받은 뒤 보조금만 2억여원 타내

사기로 유죄 판결 받고도 충남도청 보조금 33억원 중 50~60%를 계속 지원 받아

충남도청 "면허 취소하면 시민들 불편 우려" 변명

대전의 한 시외버스 터미널. 서산·공주·보령 등 인근 충남 지역으로 향하는 버스 수십대가 정차돼 있었다. 터미널은 한산했다. 승객 대기실은 비어 있었고 식당에는 버스 기사 몇몇만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승객을 한두 명씩 태우고 차고지를 떠나는 버스도 보였다. 운수 회사들이 텅 빈 버스로도 노선을 운행할 수 있는 것은 적자(赤字)를 보는 '비수익 노선'에 대해 국고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령 노선' 만들어 보조금 빼먹어

대전 소재 J고속은 2012년 적자 노선들에 대해 충남도청으로부터 비수익 노선 인가를 받았다. 비수익 노선은 교통량 평가에 따라 노선당 승객이 15.7명 미만으로 조사될 경우 허가받는다. 하지만 J고속은 실제로는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유령 노선'에 대해 비수익 노선 인가만 받는 수법으로 정부 보조금 2억7000만원을 빼돌렸다.

조선일보

J고속은 1년에 한 차례 교통량 평가 조사를 하는 당일에만 해당 노선의 버스를 운행했다. 조사 날짜는 사전에 공지됐다. 충남 지역 5개 운수 회사의 수백개 버스 노선을 관리하는 충남도청 직원은 팀장을 제외하고 한 명이다. 충남도청 관계자는 "작년에 처리했던 교통 분야 민원만 600건이었다. (부정 수급을) 인지할 방법이 없다"며 "전국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지역 주민들 역시 평소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 해당 노선의 존재 자체를 몰랐으나 J고속 버스 기사의 내부 고발로 드러났다. 대전 소재 K고속 역시 비슷한 수법으로 2011~2013년 비수익 노선 보조금 3억2000만원을 빼돌렸다. 국민권익위원회 하홍순 조사관은 "자판기처럼 누르면 (도청이) 돈만 줬다"며 "버스 회사들이 도청을 물로 본 것"이라고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 적발돼도 보조금 또 받아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J고속 사장 조모씨는 작년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K고속 지분도 가지고 있었던 조씨는 재판을 받고 있는 도중 K고속의 신임 사장으로 선임됐다. 업계에서는 "(빼돌린 보조금을) 회사를 위해 썼지 개인적으로 썼겠느냐"는 동정 여론도 나왔다. 조씨는 현재 J고속, K고속을 동시에 경영하며 사세(社勢)를 확장하고 있다. 보조금을 빼돌리다 적발된 두 운수 회사는 여전히 비수익 노선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급받고 있다. 유죄판결을 받고 빼돌린 보조 금액만큼 환수 조치를 당한 두 회사는 현재 약 33억원에 달하는 충남도청 전체 비수익 노선 지원 예산의 50~60%를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노선, 사업 구역, 업무 범위 등을 위반해 사업을 한 경우 업체의 면허를 취소하거나 영업을 정지시킬 수 있다. 충남도청 관계자는 "면허를 취소할 수도 있겠지만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교통 대란이 올 수 있어 강력한 처벌이 힘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운수 회사들은 "산간벽지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운수 회사들이 적자를 보면서도 버스 노선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609억원 버스 보조금 과다지급

낭비되는 버스 보조금 문제는 전국적 현상이다. 감사원이 올 초 발표한 '교통 관련 보조금 집행 실태'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버스 등 운수업체에 대해 적자 보전 명목으로 지급된 국고 보조금 총액은 1조6739억원에 달했다. 감사 결과, 2013년 서울·부산·인천·대구 등 4개 광역시가 지원 금액을 부적절하게 산출하면서 버스 업체들에 609억원의 보조금을 과다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손실을 보전해 주는 버스 준공영제가 실시되면서 업체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