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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박수찬의 軍] 잠수함에서 먹는 '스테이크'에는 특별한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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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해군의 209급 잠수함.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식사는 모든 활동에서 최우선 순위를 차지한다.

전쟁터에서도 이는 마찬가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이 탈영하거나 적에게 항복해 전투에서 패한 경우를 역사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수중에서 작전을 펼치는 잠수함 승조원들에게는 식사가 ‘생존’의 문제이자 유일한 ‘낙’이기도 하다.

맛있는 식사가 제공되면 함 내에 활기가 돌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기가 떨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잠수함 함장과 조리장은 승조원의 사기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식단 구성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 잠수함의 별미 ‘쪄먹는 스테이크’

24일 해군에 따르면, 잠수함 식사 메뉴 중에서 가장 특별한 것이 바로 ‘잠수함 스테이크’다.

일반적으로 스테이크는 불에 굽거나 기름에 튀긴다. 하지만 좁고 밀폐된 잠수함 내에서 불이나 기름을 사용하면 화재 위험은 물론 그을음이 전자장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전기 오븐에 쪄서 요리한다.

이렇게 요리한 ‘잠수함 스테이크’는 잠수함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육군, 공군 등에도 별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잠수함에서 스테이크와 같은 육류는 출동 직후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올 때 주로 제공된다. 저장성이 좋아 오랜 기간 동안 보관해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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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에서 만든 비빔밥(좌)과 스테이크(우).


반면 신선도 유지가 중요한 야채는 출동 초기에 식재료로 많이 쓰인다. 야채는 비타민 섭취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잠수함에서는 적재 공간이 좁고 신선도 유지가 어려워 1주일 정도 지나면 먹을 수 없다.

때문에 잠수함 승조원들은 비타민을 따로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 하와이 앞바다에서 열리는 림팩(RIMPAC)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해군 잠수함이 출항하면 승조원들은 동료로부터 비타민 C 선물을 가장 많이 받는다.

◆ 잠수함의 실세는 조리장?

물속에서 장기간 항해하는 잠수함 승조원들의 유일한 낙은 식사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작전을 펼치는 승조원들은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환경에 24시간 노출되어 있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고 탁한 함내 공기를 마시며 생활하다보면 가려움증 등 질병에 걸릴 위험도 높다.

협소한 공간에서의 생활과 적은 운동량에도 불구하고 승조원들이 먹는 하루 음식 섭취량이 일반인들의 일일 영양섭취 권장량 2500kcal 보다 훨씬 높고,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한 식단이 제공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잠수함에서 조리장은 함장 다음으로 영향력을 갖는 실세(?)라는 우스개도 나온다. 조리장이 어떤 식단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함내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함장은 전체 승조원의 사기 유지 차원에서 조리장과의 팀워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문제는 잠수함의 특성상 조리장이 제공할 수 있는 식단이 제한된다는데 있다.

해군 잠수함은 2000t이 채 되지 않아 식재료를 충분히 적재할 수 없다. 조리실도 매우 좁아 큰 취사기구의 사용이 불가능하고 조리장 혼자서 40여명의 식사를 만들어야 한다. 통풍이 되지 않아 연기나 습기가 많이 발생하는 메뉴는 요리할 수 없다. 잠수함의 생명인 저소음을 유지하기 위해 요리 과정에서 소음이 발생하는 메뉴도 불가능하다.

과일 역시 수박 등 씨가 있는 과일은 함내 청결 상태를 고려해 적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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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되는 214급 잠수함 `유관순함`


이러한 제약 속에서 최상의 식단을 구성하기 위해 함장들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잠수함에서 식사는 승조원들이 서로 소통하며 전우애를 다지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잠수함의 출항이 결정되면 출항 전 함장들은 별도의 회식을 마련해 승조원들의 건강과 음식 기호를 살핀다. 이를 통해 항해 중 식단을 편성한다.

잠수함부대에서 만든 ‘잠수함 표준메뉴’ 책자를 참고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승조원들에게 인기가 좋은 식단에 대한 조리법 등이 수록되어 있어 조리장들이 식단을 준비하거나 요리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한편 해군에는 ‘사관식사’라는 독특한 식사문화가 있다. 과거 영국해군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장교들은 사관실에서 함장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잠수함도 사관식사를 하는데 수상함과는 달리 공간이 좁아 서로 무릎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 식사를 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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