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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다 놀러갔나보죠” 아파트 모델하우스의 이상한 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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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 호황에 ‘편법’ 깜깜이 분양 성행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글쎄요. 연휴라 다들 놀러갔나보죠. 비도 오고….”

지난 3일 한 방문객이 서울 서대문구 홍은12구역을 재개발한 북한산 더샵 모델하우스에서 “손님이 왜 이렇게 없냐”고 묻자 모델하우스 상담사는 이렇게 답했다. 요즘 아파트 모델하우스 분양 담당자들은 모델하우스 방문객 숫자에 상당히 집착한다. 분양 당시 방문객 수, 청약경쟁률 등이 나중에 아파트 계약률까지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델하우스는 달랐다. 손님이 없어 모델하우스에 파리가 날려도 오히려 느긋한 모습이었다.

방문객은 이어 황당한(?) 설명을 들었다. 상담사는 이 아파트 소형평형은 대부분 1순위 청약에서 마감돼 미분양된 일부 대형평형 위주로 선착순 동호수 지정계약이 가능하다며 그를 안내한 것이다. 통상 아파트 분양 일정은 모델하우스 오픈 1주일 후 청약, 청약 2주일 후 계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북한산더샵 아파트의 공식 모델하우스 오픈일은 5월1일. 그러니까 이 아파트의 통상적인 청약 시작일은 5월6일께인데 청약을 1주일여 앞당긴 4월30일에 이미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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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픈한 북한산더샵 모델하우스는 최근 부동산 훈풍 분위기와는 달리 방문객이 거의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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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깜깜이’ 분양의 전형적 사례였다.

아파트 분양 호황기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깜깜이’ 분양 사례가 최근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깜깜이 분양은 건설사가 청약을 조용히 진행해 일시적으로 미분양 처리한 뒤 임의로 선착순 동호지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계약률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건설사는 미분양 소진을 위해 임의로 선착순 분양 등 다양한 방식을 쓸 수 있다.

주로 불경기 때 분양한 아파트의 대거 미분양이 불가피할 때 쓰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초호화 아파트 분양에서 확실히 분양 의사가 있는 VIP들을 대상으로 사전 계약을 해놓고 깜깜이 분양을 진행하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하다. 작년 3월 분양한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고가 아파트(3.3㎡당 분양가 3200만~4800만원) 트리마제가 깜깜이 분양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 부동산 훈풍이 부는 가운데 나타난 ‘깜깜이’ 분양은 부동산 업계에서 상당히 이례적으로 비춰지고 있다. ‘아파트 청약률이 높을수록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높다’는 속설에 따라 보통 아파트 청약을 앞두고 집중적인 홍보를 펼치는 최근 추세와 확연히 다른 행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분양만 하면 높은 경쟁률로 마감되기 때문에 공급자 우위의 시장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예전에는 모델하우스에 손님을 모셔오기 위해 건설사들이 안간힘을 썼지만 지금은 가만둬도 알아서 몰려오기 때문에 급기야 깜깜이 분양을 해도 분양이 되는 시장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북한산더샵 아파트는 지난달 30일 청약에서 전용 59㎡와 84㎡가 모두 1순위 당해에서 마감됐다.

깜깜이 분양을 해도 청약이 마감되는 상황에 업계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깜깜이 분양이 절차와 규정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의 소지가 다분하고, 이로 인해 청약 의사가 있는 불특정 다수의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불법은 아니지만 깜깜이 분양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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