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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파주 민통선은 남북 연결 보금자리… 서식지 파괴 땐 수원청개구리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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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청개구리’ 연구하는 프랑스 청년 아마엘 볼체

▲ 마다가스카르서 시작된 개구리 사랑이 한국까지

몸집 작은 수원청개구리, 청개구리와 불리한 경쟁


▲ 논농사 이후 멸종 시작

파주지역 임진강 준설 땐 남북에 고립돼 도태 가속


“파주의 서식지가 파괴되면 남북한의 수원청개구리가 고립되고, 멸종이 가속화될 수도 있어요.”

지난달 23일 경기 파주 월롱초등학교 독서실에서는 프랑스 청년 아마엘 볼체가 한국인들도 이름을 잘 모르는 수원청개구리의 위기를 설명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는 2012년부터 한국에 와서 수원청개구리를 연구 중이다. 심포지엄이 열린 독서실은 초등학교 교사·학생과 환경단체 활동가, 학자들로 가득 찼다. 볼체는 “월롱초등학교 주변은 특히 파주에서도 수원청개구리 개체가 많이 발견된 곳”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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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청개구리 수컷이 경기 파주시 임진각 부근의 한 논에서 벼를 붙잡고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 아마엘 볼체 제공


프랑스인이 한국에서 개구리를 연구하는 이유를 물었다. 볼체는 “어린 시절 마다가스카르의 논에서 개구리를 잡으며 놀았는데 그때부터 개구리가 좋았다”며 웃었다. 그는 스위스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개구리·하마 중에 하나를 선택해 연구할 기회를 얻었고,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개구리를 골랐다. 2012년 한국에 와서부터 수원청개구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서울대 석사과정과 이화여대 박사과정을 거쳤다.

볼체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팀과 함께 지난해까지 전국 논·습지 500곳에서 수원청개구리가 있는지 조사하고, 청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 유전자를 조사하는 작업을 했다. 지난달 29일과 30일에도 그는 수원청개구리를 채집·조사하러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이대 에코과학부 연구자들과 함께 시흥·평택·용인의 논을 헤매고 다녔다. 2012년부터 환경단체·자원봉사자·초등학생 30팀이 시민참여과학 형태로 서울·경기·인천·충청 지역에서 수원청개구리를 추적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안 가본 곳 없을 정도로 다닌 전국의 100곳에서 986마리의 수원청개구리를 찾아냈다. 수원청개구리는 북쪽으로 파주의 민통선지역, 남쪽으로는 충남 당진~충북 진천 사이에서 발견됐다. 대부분은 경기 북부와 남부에 집중돼 있다. 볼체가 중요한 서식지로 여기는 곳은 파주이다. 남북한의 수원청개구리 서식지를 연결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임진강을 준설하는 하천정비사업, 도로 신설 등으로 파주의 서식지가 훼손되면 남북의 수원청개구리가 고립돼 멸종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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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어디에나 살고 있는 청개구리와 달리 거의 비슷한 외양의 수원청개구리가 멸종 위기를 맞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대 연구진은 인간이 수원청개구리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청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를 생존 경쟁으로 몰아넣었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수원청개구리가 도태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장 교수는 “수원청개구리가 멸종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약 2000년 전 한반도 전역에서 논농사가 시작된 때부터로 추정된다”며 “인간 활동으로 인해 이전까지 만날 일이 별로 없던 수원청개구리와 청개구리가 경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원청개구리는 주로 풀이 많이 난 습지에 살고 청개구리는 호수·강 주변에 많았으나, 습지가 줄면서 두 종의 서식지가 겹치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수십년 새 벌어진 대규모 개발은 서식지 파괴와 수원청개구리 감소를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최초 발견지인 수원에서 수원청개구리가 사라진 것 역시 논이 도시로 바뀌는 도시화 탓일 가능성이 높다. 장 교수는 “인간이 수원청개구리와 청개구리가 분화되는 진화에 개입하게 된 셈”이라며 “수원청개구리가 청개구리와 합쳐지는 역방향의 종 분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원청개구리가 청개구리보다 다소 몸집이 작은 것도 경쟁에서 밀리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대 연구진의 추적 결과 수원청개구리들은 청개구리가 산이나 숲의 나무에서 휴식하는 시간을 피해 산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수원청개구리와 청개구리가 교미를 통한 번식이 가능한 것도 수원청개구리에게는 불리한 점이다. 수원청개구리 암컷 중에 일부가 같은 종이 아닌 청개구리의 울음소리에 더 매력을 느껴 청개구리 수컷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번식 가능 여부는 종을 구분하는 척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나 개구리는 다른 종끼리의 번식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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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수원청개구리처럼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과 동식물의 생존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들어 지질시대 구분상 산업혁명 이후를 ‘인간세’로 구분하기도 한다. 약 1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시대상 구분은 신생대 제4기 현세(홀로세·Holocene)이다.

장이권 교수팀은 올해 수원 성균관대 근처에 수원청개구리가 서식할 수 있는 습지를 복원하고, 수원청개구리 알을 채집·포육한 뒤 방사할 계획이다. 장 교수는 “수원청개구리를 잡아다 다른 곳에 풀어주는 식의 방사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알을 채집해 기른 후 성체가 되면 일부는 원래 서식지에 방사하고, 일부는 새로 복원한 습지에 풀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수원청개구리와 청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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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연구자가 아닌 이상 청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를 외양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겉모습보다는 어디에 앉아 울음소리를 내는지로 알아채는 게 빠르다. 청개구리는 주로 논둑에서, 수원청개구리는 논 안쪽에서 울음소리를 낸다. 땅이나 풀잎 위에 앉아 있는 개구리는 청개구리일 가능성이 높고, 벼를 앞발로 꼭 붙잡고 매달려 울음소리를 내는 게 수원청개구리이다. 청개구리보다 수원청개구리는 울음소리 간격이 길고, 고음인 것도 특징이다.

수원청개구리가 청개구리와 다른 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불과 38년 전이다. 1977년 일본 학자 구라모토 미스루가 수원에서 청개구리와 다르게 우는 종을 발견하면서 발견 장소인 수원을 학명(Hyla suweonensis)에 반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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