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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취재파일] '포스코 그룹' 얼마나 부패했길래…검찰 수사가 더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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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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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고위 관계자가 '포스코 그룹' 수사의 명분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포스코는 지난 50년 동안 우리 경제 성장을 견인했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 경제의 주축이 되는 국민기업입니다. 포스코 수사는 국민기업인 포스코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포스코가 기술혁신을 다시 이뤄내고 철강본연의 경쟁력을 회복해서 국민들로부터 다시 존경받는 기업,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포스코가 되게 하는 것이 검찰의 이번 수사의 목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포스코 본사와 계열사의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확인되는 비리들에 대해서 검찰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차근차근 수사를 해 나가겠습니다."

검찰은 '포스코 수사'를 처음부터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주축기업의 활동이 검찰 수사로 인해 위축된다면 가뜩이나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대한민국 경제에는 '득'보다 '실'이 크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성장엔진과도 같은 '포스코 그룹'입니다. 고속성장의 촉매제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주춧돌 역할은 계속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게 국민기업 포스코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검찰은 수사를 보편적으로 '환부를 도려낸다'는 작업이라고 표현합니다. 곪은 상처가 있으면 국소마취를 해서 외과적인 수술로 환부를 제거한다는 얘기입니다. 수술 후에 후유증이 오래 남지 않도록 해 정상 생활로 짧은 시일 내에 복귀가 가능할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개인이 아니라 기업일 경우에 이 과정은 더욱 중요합니다.

반면에 검찰은 '먼지털이' 수사라는 표현을 가장 싫어합니다. 티끌 하나까지도 털어버리겠다는 수사기관의 교만함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이른바 '건수' 하나 잡아서 표적이 쓰러질 때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아붙이는 잔인함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여론을 등에 업느냐, 오히려 외면당하느냐에 따라 수사의 성과와 결론이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체득해온 검찰이기 때문에 수사의 우선순위를 따질 때 나름 수사의 명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생긴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런 검찰이 포스코 그룹 비리를 '차근차근' 수사해 나가겠다고 천명했습니다. 방점은 '차근차근'에 있습니다. 비리의 뿌리를 발본색원할 때까지 오랫동안 수사하겠다는 뜻입니다. 환부를 도려내는 '핀포인트' 수사가 아니라 전신마취를 하고 강한 항생제를 투여하며 오랜 시간 대수술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포스코 그룹의 비리 의혹이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포스코 수사는 말 그대로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포스코 건설의 베트남 비자금 조성의혹에 이어 포스코 그룹의 비자금 조성의혹, 여기에 포스코플랜텍이 전정도 전 성진지오텍 회장을 고소한 사건까지 최근 접수됐습니다. 이 모든 사건이 현재 진행형입니다. 포스코 건설 수사의 경우 이른바 검찰 수사의 1차 대상은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이었습니다. 베트남 비자금 조성을 지휘했던 인물로 검찰이 지목했던 인물입니다. 두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정동화 전 부회장 소환 시점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수사 상황이 왜 이렇게 더디냐는 질문에 대한 검찰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정 전 부회장의 혐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올라가는 길목마다 있는 임원들의 개인비리가 심각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미 지난 달에는 비자금 조성에 관여하면서 10억 원 상당의 금품을 따로 챙긴 혐의로 포스코건설 토목환경사업본부장이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협력업체와의 거래대금을 부풀려서 3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는데 비자금의 일부를 개인적으로 착복한 혐의입니다. 검찰이 보는 포스코 그룹의 비리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공사를 따낸 다음 함께 공사할 협력업체를 선정합니다. 협력업체에 공사비를 나눠줄 때 실제 협력업체에 돌아가는 금액보다 많은 돈을 쥐어주고 회계장부를 조작해서 더 넘어간 돈 만큼 포스코 건설 임원들이 비자금으로 조성합니다. 이 비자금이 상부로 올라가는 과정에서는 전달 과정에 개입된 임원들이 비자금의 일부를 따로 챙기는 방식입니다.

30억 원의 비자금 가운데 전무급이 10억 원을 챙긴 혐의가 드러났으니 그 위의 인사들 가운데는 더 챙긴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는 게 검찰의 생각입니다. 검찰 수사가 차분하게 갈 수 밖에 없는 건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사람이 누군지를 찾아내려고 했는데 중간에 착복하고 횡령한 인사들이 너무도 많아서 도저히 지나칠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포스코 건설 비리 의혹을 두고 '피라미드 구조로 이뤄진 횡령의 먹이사슬'이 공고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포스코 그룹과 코스틸 간의 거래과정에서 불거진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비슷한 가설에서 시작됩니다. '피라미드 구조의 먹이사슬'을 그려놓고 한 명씩 한 명씩 차분하게 조사하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가 상당기간 길어질 것 같습니다.

기업이 무너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도덕적 해이'입니다. 검찰 수사가 사실이라면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줄 알았던 포스코 그룹이 내부의 비리사슬 속에 썩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사과정에서 구속된 포스코 안팎의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여기선 일단 생략하고 가겠습니다.

문제는 검찰 수사는 아직도 초기단계라는 점입니다. 성진지오텍 특혜 인수 의혹에 동양종합건설 공사 몰아주기 의혹도 남아 있습니다. 검찰의 의지가 이 정도라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올해 말까지 포스코 그룹 종합비리 의혹 수사에만 매진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수사기간이라면 그야말로 검찰이 듣기 싫어하는 '먼지털이'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검찰이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게 신기합니다. 그만큼 포스코 수사에 명분이 있다는 자신감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 검찰 고위관계자가 '철강산업'에 관련한 책을 샀다고 합니다. 전문분야인 만큼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수사가 한두 달 안에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자들도 '철강관련 서적'들을 사러 서점에 가야할 것 같습니다.

[이한석 기자 lucasid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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