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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대졸 백수’ 한숨 깊은데… 당국은 고졸 취업 대책만 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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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정책도 ‘미스매치’

대학에 다니던 2009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김모(30)씨는 매일 새벽 첫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공부를 해야 하는 것 외에도 부모님 얼굴 보기가 죄송스러워서다. 행정고시 준비 초기 때는 1차 시험을 통과해 2, 3년 안에 합격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벌써 6년째다. 2013년에는 기업체에 원서도 내봤지만 취업만 준비한 구직자들에 비해 스펙 등에서 차이가 컸다. 결국 공무원 시험 준비를 다시 하고 있지만 언제 합격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취업이 힘든 상황에서 같이 노력을 할 거면 공무원 시험이 좀 더 결과가 낫지 않겠냐는 판단에서 시작했다”며 “취업이 되지 않은 친구들도 나이가 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의 취업 시장이 빙하기를 맞고 있다. 경기 침체 등으로 기업들이 일자리를 늘리지 않고 있어 고학력자들의 취업은 갈수록 바늘구멍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대책 역시 고졸 취업 활성화 등 고용률을 높이는 데만 집중돼 있어 사실상 고학력 실업사태에 손을 놓고 있다.

세계일보

◆갈수록 줄어드는 취업문

26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4년제 대졸 실업자와 구직단념자 등 비경제활동인구는 전년 동월에 비해 각각 5.4%, 7.0%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15세 이상 4년제 대졸자 인구 증가율 3.3%, 취업자 증가율 3.5%를 크게 웃돈다. 또 1년 이상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을 못한 장기 실업자도 속출하고 있다. 4년제 대졸 장기 실업자는 지난 1월 7만4000명, 2월 10만6000명, 3월 10만7000명 등으로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고학력 실업난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올해 신규채용 규모를 줄일 예정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전국에 있는 100인 이상 기업 377개를 대상으로 ‘2015년 신규인력 채용동태 및 전망조사’를 한 결과, 기업들의 신규 인력 채용 규모는 작년보다 3.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채용 규모는 작년보다 3.4%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중소기업(100∼299인)의 경우 채용 규모 감소 폭이 2014년 -1.7%에서 올해 -6.5%로 확대됐다. 학력별 채용 규모 역시 대졸(-3.1%)과 고졸(-4.9%) 모두 감소하고, 특히 중소기업의 대졸 신규채용은 작년보다 8.5%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조사에서도 대졸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경련이 종업원 수 300명이 넘는 207개사를 대상으로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작년보다 덜 뽑겠다’는 곳은 14개사(6.8%), ‘한 명도 안 뽑겠다’는 곳은 10개사(4.8%)로 나타났다. 대기업 10곳 중 한 곳 이상인 11.6%가 대졸자를 아예 뽑지 않거나, 줄여 뽑겠다는 것이다. ‘작년보다 더 뽑겠다’는 곳은 12개사(5.8%)에 불과했다.

◆고용률 높이는 데만 치중하는 정부

고학력 실업자와 비경제활동 인구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정부가 그간 내놓은 대책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들이어서 실효성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일자리 단계별 청년고용 대책 등을 잇달아 내놨지만 고학력 청년층보다는 고졸 및 중소·중견기업 고용문제 해소에 무게를 뒀다. 특성화고와 폴리텍대 부설학교, 기업대학 등을 통해 일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도록 참여기업에 세제혜택을 부여하거나 채용과 연계한 기업맞춤형 수업을 산업단지 인근 학교 1000곳으로 확대한다는 대책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현재 ‘선 진학-후 취직’인 고용 구조를 ‘선 취직-후 진학’ 구조로 바꾸겠단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대책은 대학진학률이 70%에 달하는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대졸자들은 대기업·공기업 등 안정적 일자리를 선호하면서 청년들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이 없는 미스매치 현상을 간과한 것이다. 이에 정부가 박근혜정부의 국정 핵심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고용률이 낮은 고졸자들의 취업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기준 4년제 대졸자의 고용률은 74.2%로 고졸자 고용률 61.2%보다 높다. 수치상으로 고졸자의 고용률을 높이면 국정과제 달성이 용이하다 보니 청년 취업의 가장 시급한 문제인 대졸 실업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정부는 대졸 청년 취업을 확대하기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 등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로 협상이 결렬됐지만,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중장년층이 일자리를 내놔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데 이들을 위한 대책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기부진,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인건비 상승, 60세 정년 의무화 등의 영향으로 대졸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문과 출신 여성들의 대기업 취업이 매우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귀전·김유나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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