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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범죄 피해 악몽 씻고 일상으로" 숨은 조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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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부터 경제·의료비 지원

끔찍한 범죄현장 뒷정리까지

서울스마일센터·바이오해저드 등

범죄피해 후유증 극복케 도와

민간이외 정부차원 지원은 부족

한국일보

지난달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던 A(41ㆍ여)씨는 집 안에서 강도에게 몸을 결박 당한 채 33시간 감금당하고 흉기에 손가락을 찔렸다. 범인은 며칠 뒤 붙잡혔지만 A씨는 이후 계속해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수사를 담당한 서울 강남경찰서 경찰은 그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판단, 서울스마일센터를 소개했다. 이곳에서 전문상담을 받은 A씨는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강도 살인 성폭행 등 강력범죄의 피해자들은 육체적 고통 못지 않게 정신적 상처로 오랫동안 끔찍한 후유증을 겪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 결과 범죄 피해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는 2009년 5,900명에서 2013년 6,700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에 비해 우리 사회의 관심과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범죄 피해자들을 뒤에서 묵묵히 보듬는 이들이 있다.

A씨가 도움을 청한 서울스마일센터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다른 이름이다. 2010년 법무부로부터 피해자들의 심리치료 위탁을 받은 스마일센터에는 경찰 검찰 법원이 소개한 피해자들의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2013년에만 261명의 피해자들이 이 곳을 거쳐갔다. 피해자를 아예 범죄발생 장소에서 격리시켜 집중 치료를 진행하는 점이 이 센터의 가장 큰 특징이다. 윤성우 서울스마일센터 부센터장은 26일 “범죄의 기억 때문에 거주지 생활이 곤란한 피해자는 2주간 무료로 생활관에 체류하며 심리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2013년 13명의 피해자가 생활관에 입소하는 등 많은 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해 서울 외에도 인천 부산 광주 대전 대구 등에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피해자에게는 범죄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는 현장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는 일도 골칫거리다. 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는 ‘범죄현장 청소부’로 불린다. 2008년부터 강력범죄 발생 장소의 뒤처리를 도맡아 하고 있다. 그는 올해 2월 충남 천안에서 일어난 아파트 살인사건 현장(사진)을 잊지 못한다. 피해망상증을 앓던 30대 남성이 이웃주민과 자신의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는데, 현장은 말 그대로 피바다였다. 김 대표는 “다른 곳과 달리 범죄 현장의 겉모습은 시각적 충격 강도가 훨씬 크다”며 “뒷정리도 혈흔 반응제를 사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핏자국을 찾고 특수약품처리와 살균소독을 해야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전적 지원과 법률상담 등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단체도 있다. 한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2004년부터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법률상담과 경제ㆍ의료비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B(29ㆍ여)씨는 올해 1월 서울 강남에서 강도를 만나 얼굴에 상처를 입고 치아까지 손상돼 2주 간 입원 및 2개월의 통원치료 진단을 받았다. 수백만원의 병원비에 발만 동동 구르던 B씨에게 지원센터는 의료 비용 350만원을 긴급 지원했다. B씨는 “빠른 피해 지원 덕분에 때를 놓치지 않고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완벽하게 자신감을 되찾은 상태”라고 전했다.

다만 이 같은 범죄피해 지원은 대부분 위탁 운영되거나 민간기관ㆍ단체가 주도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피해자 지원을 위한 경찰 자체 예산은 한 해 2억여원에 불과하다. 일선서 한 경찰관은 “자택에서 범죄를 당해 불안해 하는 피해 당사자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정도”라며 “현장에 배치된 전담경찰관 인력도 턱없이 모자라 민간에 사후 처리를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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