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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중앙은행들 돈 풀자 고삐 풀린 세계 부동산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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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25개국 평균 부동산 수익률 9.9%

2007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아

양적완화에 부동산으로 돈 몰려

미국·영국 고가 부동산서 거품 시작

“금융시장 불안 높일 수 있어” 지적


에드 밀리밴드 영국 노동당 대표는 새달 치러지는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하면 고가주택 보유세인 ‘맨션 택스’(mansion tax)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맨션이라는 이름에서는 넓은 정원이 딸린 대저택이 연상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노동당은 맨션 택스 과세 대상을 가격이 200만파운드(32억3500만원) 이상인 주택으로 할 예정인데, 집값이 비싼 런던에서는 200만파운드 이상 주택 가운데 방 두개짜리 좁은 집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 수도 런던은 부동산 가격이 원래 높은 편이지만, 이튼스쿨 같은 고급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는 외국 부유층의 주택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최근에는 부동산 가격이 더욱 치솟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 상업용 부동산인 런던 에이치에스비시(HSBC) 은행 본부 건물 매매가격도 부동산 시장이 다시 호경기를 맞았음을 보여준다. 지난해말 한국 국민연금은 카타르 국부펀드인 카타르투자청에 에이치에스비시 건물을 약 11억파운드에 매각했는데, 이는 영국 단일 건물 거래로는 사상 최고가 수준이다. 이 건물을 국민연금이 2009년에 사들일 당시 가격은 7억7250만파운드였다. 미국에서도 최근 금융 부문을 정리하기로 결정한 제너럴일렉트릭(지이·GE)이 300억달러에 이르는 자사 보유 부동산을 금융회사인 블랙스톤과 웰스파고에 팔기로 했는데, 외신들은 지이가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고 있는 요즘이 부동산 자산 매각의 적기로 판단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영국만이 아니다. 세계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며 다시 거품이 끼고 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분석을 인용해 세계 금융위기 이후 또다시 부동산 거품 우려가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관이 세계 25개국을 대상으로 지난해 부동산 수익률을 추적해보니,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 25개국 부동산 평균 수익률은 9.9%로 5년 연속 상승했다. 국가별로는 아일랜드가 가장 수익률이 높았는데 무려 40.1%에 달했다. 영국도 17.8%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은 11.2%, 오스트레일리아는 10.6%,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2.9%로,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기관은 보고서에서 “전세계 부동산 가격이 갈수록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각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와 같은 완화적 금융정책으로 돈을 시중에 대량으로 풀고 있는 점이 그 배경이라고 짚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대표적인 예로 지난달부터 시작된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정책을 꼽았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의 피터 홉킨스 리서치 책임자는 “돈을 빌리는 비용이 너무 싸다”며 “하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유지될 수 있을지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유례없는 채권 수익률 하락이 부동산에 대한 광란적 매수로 이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신문은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세계를 금융위기에 빠뜨린 전력이 있는 미국에서 부동산 거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하며, 부동산 거품 징조가 미국과 영국 주요 도시의 고가 부동산 시장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도 세계 26개국의 지난해 부동산 시장을 추적해보니, 주택 가격이 고평가돼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 캐나다였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기준금리를 내린 국가들에서 부동산 거품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기준금리 추가 인하로 부동산 가격이 더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중앙은행(RBA)의 글렌 스티븐스 총재는 이르면 다음달 초 또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내비쳤는데, 지난 2월에도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2.25%로 내린 바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지난해 140.3%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오스트레일리아를 한국과 더불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금융위기 이전 미국보다 높은 나라라고 전했다.

유로존(유로를 쓰는 19개국)과 통화전쟁을 벌인 스웨덴에서도 부동산 거품 우려가 일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0.1%에서 -0.25%로 더 내렸다.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떨어뜨린 지 한달 만의 일이었다. 추가적으로 300억크로나 규모의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도 실시했다. 유럽중앙은행이 양적완화로 유로 가치를 끌어내리자, 자국 통화인 크로나 가치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로 풀이됐다. 스웨덴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170%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번 기준금리 인하가 부동산 시장 거품을 더욱 키울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유럽 금융회사인 스탠더드라이프인베스트먼트의 제임스 매캔은 “스웨덴의 대규모 자산 매입 시도 등은 주택 부문에 (대출 등) 신용 창출 규모를 키워 금융시장 불안을 높이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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