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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이란 기업 요구 수용말고 중재 대비해야"…론스타 이어 두번째 ISD 가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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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하겠다고 한 이란계 가전회사 엔텍합그룹의 조정협상 요구를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말고 중재신청에 대비해야 한다는 법률 자문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정부가 이 자문대로 다음달 15일까지 조정협상 요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이은 2번째 투자자-국가소송(ISD)이 가시화하고 있다.

박주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6일 입수한 법률 자문서를 보면, 법무법인 현은 지난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우리은행·금융위원회 등에 “엔텍합이 지난 2월 19일자 서신을 통해 한국 정부에 제안한 조정협상에 대한 동의는 (캠코, 우리은행 등) 매도인들이 주식 및 채권 양수도계약을 해지한 뒤 발생한 매도인들과 매수인들 사이의 분쟁처리 과정·결과에 배치되는 점이 있어 다른 사정이 없는 이상 그 제안을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자문했다. 2010년 당시 엔텍합이 인수하려다 실패한 옛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대주주가 캠코이며, 주채권은행은 우리은행이었다.

법무법인 현은 엔텍합이 이번에 제기한 분쟁과 관련해 2012년 2월 한국 법원의 판단이 이미 내려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엔텍합의 요구를 수용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비록 그 그 결정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아니었지만 “엔텍합이 제출한 투자확약서 하자에 따른 계약 해지가 정당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만큼 계약금 반환 혹은 손해 배상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2013년 1월2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주이란대사관 정문 앞에서 이란계 가전회사 엔텍합그룹 전·현직 직원 500여명이 대우일텍트로닉스 인수 계약금 578억원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이란 한국대사관 제공


엔텍합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2011년 10월 내려진 법원 조정 결정에 캠코 등 대우일렉 매도인들이 동의하지 않은 것과도 배치된다는 의견도 포함됐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매도인들에게 대우일렉 인수·합병(M&A) 무산에 따라 엔텍합으로부터 받은 계약금 578억원을 전액 상환하되, 엔텍합으로부터 대우일렉 외상금 3000만달러를 받으라는 내용의 조정 결정을 제시했다. 이 결정에 엔텍합은 동의를 했지만 캠코를 포함한 매도인들은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열고 이를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법무법인 현은 “특별한 다른 사정이 없는데 예전 결정을 바꿔 엔텍합이 요구한 조정 협상에 응하기로 한 것은 법원의 조정 결정에 부동의한 의사결정에 반하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현은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으로서는 엔텍합의 지배주주(Dayyani Family)가 향후 제기할 것으로 보이는 중재 신청을 철저히 대비하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엔텍합은 지난 2월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중재 전문 로펌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윤병세 외교부 장관·장영철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을 수신자로 한 중재 의향서를 보냈다. 엔텍합은 중재 의향서에서 “한국이 한·이란 투자보장협정을 위반해 엔텍합이 심각한 손해를 입었다”며 “다음달 15일까지 한국 정부가 보상 협상을 시작하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임의중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의중재는 대한상사중재원,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 중재기관에서 하는 기관중재와 달리 중재기관 없이 중재 당사자와 중재인만으로 진행된다.

이번 투자자-국가소송과 관련된 당사자들은 구체적 진행 상황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21일 주한 이란대사관에 ‘엔텍합이 한국 정부를 실제로 국제중재에 회부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 질의서를 보냈지만 이란대사관 측은 이날까지 답변을 보내지 않고 있다. 전요섭 금융위 구조개선지원과장은 “엔텍합이 중재의향서를 보내온 뒤 관계 부처 간 기초적인 논의는 이뤄졌다”며 “(다음달 15일까지 대화로 해결될 수 있을지는) 지금 현 단계에선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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