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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벚꽃 ‘한-일 원산지 논쟁’ 왜 끝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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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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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일본 교토의 벚꽃도, 워싱턴 포토맥 강변의 벚꽃도 한국산.”

한-일 관계가 차갑게 식은 해 4월이면 어김없이 이런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독도 문제가 뜨겁던 2011년에도, 위안부 문제가 불거진 올해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미국 등 세계적으로 길거리와 공원에 많이 심는 벚나무(엄밀하게는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한라산이고 이것이 일본을 비롯해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주장은 1960년대부터 나왔다. 식물분류학계 원로인 박만규 전 고려대 교수는 <동아일보> 1962년 4월17일치에 실린 글에서 “왕벚나무는 제주도 한라산에서 출생하여 일본으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총애를 받았고 미국에까지 시집을 가서 귀염을 받고 있다”며, 1908년 프랑스 신부 타케와 1932년 일본인 학자 고이즈미가 한라산에서 왕벚나무를 채집해 자생지를 확인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그해 박씨가 이끈 한라산 답사대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왕벚나무 3그루를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현재까지 발견된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는 약 200 그루에 이른다. 이처럼 반세기 넘게 ‘제주 원산지론’을 주장해 왔고 적지 않은 증거까지 제시했는데도 이 논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다른 종류의 벚나무와 쉽게 교잡을 해 기원을 밝히기 힘든 벚나무의 특성과 함께, 과학적인 규명은 소홀히 한 채 목소리만 높인 학계와 정부·언론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한국 기원설에 맞서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찾기 위해 전국을 구석구석 뒤졌지만 실패하자, 사람이 교잡해 만든 재배종이란 결론을 냈다. 여의도와 진해를 포함해 우리나라 벚꽃축제의 주인공은 모두 일본이 원예종으로 만든 왕벚나무이다.

반면 한라산의 왕벚나무는 야생종이다. 일본과 한국의 왕벚나무가 형태는 같은데 자생지가 한라산에만 있다면 제주의 왕벚나무는 일본 왕벚나무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런 단순논리는 과학적으로 많은 허점을 지닌다.

무엇보다 비교 대상인 두 왕벚나무의 정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라산 왕벚나무의 정확한 기원은 아직 모른다. 일본 왕벚나무도 올벚나무와 일본 이즈반도 고유종인 오시마벚나무를 수백년 전 교잡해 만든 종이라는 것이 유력한 가설일 뿐이다. 게다가 다른 종이 각각 독립적으로 비슷한 형태로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한국 것이 일본에 갔는지, 아니면 두 나라에서 각각 탄생했는지 섣불리 결론 내릴 단계는 아닌 것이다.

최근에야 한라산 야생 왕벚나무의 탄생 기원을 밝힌 주목할 연구가 나왔다. 조명숙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박사과정생과 김승철 교수는 지난해 11월 권위 있는 <미국 식물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제주 왕벚나무가 올벚나무를 모계로 하고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를 부계로 하는 자연잡종으로 탄생했음을 핵 유전자와 엽록체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이로써 제주의 왕벚나무가 일본에서 왔을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또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제주의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진행중인 한라산 왕벚나무의 부계가 정확히 어떤 종인지, 또 일본 왕벚나무의 부모 종은 어디서 기원했는지가 밝혀진다면 원산지 논쟁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전망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한국과 일본 왕벚나무가 같은지 다른지에만 치중했지 아직까지 한번도 일본 왕벚나무의 부모 종을 포함한 연구를 하지 않았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그는 “과학적인 규명과 검증은 소홀한데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만 넘친다”고 꼬집었다.

원산지 규명 이전에 일본이 왕벚나무를 세계적인 원예종으로 개발하는 동안 우리는 뭐 했냐는 장진성 서울대 산림과학과 교수의 지적도 가슴에 와 닿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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