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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고객은 0.6초만에 떠난다…1.5류였던 삼성의 디자인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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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2006년 보르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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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5형 UHD TV 2014년 커브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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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권도경 기자] “고객은 0.6초만에 떠난다.”

2005년 4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밀라노에서 주요 사장단을 불러모았다. 이 회장은 “삼성의 디자인은 아직 1.5류”라면서 “짧은 순간에 고객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고 디자인 혁신을 주문했다. 이른바 ‘밀라노 선언’이다.

몇년새 반전이 일어났다. 이듬해 삼성전자는 와인잔을 형상화한 보르도 TV로 세계 TV시장 1위에 처음으로 올라섰다. 북미와 유럽 주요 매장 진열대 제일 앞줄은 삼성 제품이 채웠다. 노키아와 소니, 파나소닉 등 쟁쟁한 경쟁자들은 어느새 뒤로 밀려났다.

이회장이 밀라노선언을 한 지 만 10년이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 제품이 기술력을 인정받고도 삼류 취급을 받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디자인을 꼽았다. 같은 제품도 디자인이 좋아야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게 이회장의 지론이었다. 삼성의 디자인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삼성의 상상력은 아직 배고프다.

▶해외매장 진열대 앞줄로 나온 삼성 =삼성의 디자인은 2005년 밀라노 선언을 기점으로 나뉜다. 이회장은 1996년 디자인경영을 일찌감치 선포했지만 전기를 마련한 것은 2005년이다. 디자인에 대한 오너의 관심은 삼성의 제품 경쟁력을 단숨에 높이는 동력이 됐다. 삼성은 2005년 이전에는 얇고 가벼운 제품을 만드는데 치중했다. 이후 디자인적 사고가 제품 개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동향과 요구를 체계적으로 조사했고 사용자 입장에서 제품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으로 인한 성과는 숫자로 입증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6년 3월 내놓은 ‘보르도 TV’다. 이는 ‘TV는 네모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출시 16개월만에 500만대가 팔렸다. 보르도 TV는 평판 TV시장에서 새로운 표준이 됐다. 경쟁사들은 유사한 제품을 내놓기 바빴다. 이를 발판으로 삼성전자는 소니를 제치고 세계 TV 1위로 도약했다. 9년 연속 글로벌 TV 시장 1위의 신화는 디자인에서 출발한 셈이다.

이같은 디자인철학은 후발주자였던 삼성폰의 수준도 한단계 높였다. 피처폰 시절에는 블루블랙폰과 햅틱폰으로 글로벌 1위를 위한 발판을 차곡차곡 다졌다. 이들이 텐밀리언셀러(1000만대 이상 팔린 제품)의 반열에 오르면서 당시 절대강자였던 노키아를 추격할 계기를 마련했다.

스마트폰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히트상품인 갤럭시노트는 엔지니어가 아닌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태블릿 PC와 휴대전화, 수첩 등을 함께 들고다니던 사람들의 불편함에서 착안된 것이다. 출시 당시 경쟁사들은 5인치 대화면 스마트폰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태블릿 PC시장마저 잠식했다.

▶디자인 매출 신화 원동력 =이 회장은 ‘21세기 기업 최후의 승부처는 디자인’이라고 늘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디자인 연구조직은 늘 보강됐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조직을 갖고 있다. 1996년 600명에 불과했던 디자이너는 현재 1000명이 넘는다. 500명으로 알려진 애플의 두배다. 디자인 조직에 쓰는 예산도 한해 수천억원에 달한다. 미국(샌프란시스코), 영국(런던), 일본(도쿄),중국(상하이), 인도(델리) 등 5개국에 글로벌 디자인연구소도 두고 있다. 전체 디자이너 인력의 60~70%가 현지 채용인력이다.

이같은 전략은 2007년부터 빛을 봤다. 삼성전자는 2007년부터 세계 3대 디자인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2007년 미국 IDEA와 독일 iF디자인어워즈에서 각각 1개, 40개의 디자인상을 수상한데 이어 올해 iF 디자인 어워즈에서는 금상 7개를 포함해 총 48개 수상작을 배출했다. 이는 출품업체중에서 최다 수상이다.

이같은 변화는 매출로 직결됐다. 2000년대 중반 80조원대에서 주춤하던 삼성전자의 연매출은 2008년 100조원, 2012년 200조원대를 돌파했다.

/k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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