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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뒤끝작렬]우리카드, 신용으로 먹고 사는 회사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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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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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2년 만에 팀 운영을 포기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자료사진=우리카드)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2013년 3월7일. 한국배구연맹(KOVO)은 제9기 6차 이사회 및 임시총회를 열고 우리금융지주(우리카드)를 드림식스 배구단의 인수 기업으로 선정했다.

당시 드림식스 인수에는 우리카드 외 아프로파이낸셜그룹(러시앤캐시)이 참여했다. 러시앤캐시는 모기업 없이 KOVO 기금으로 운영되던 드림식스의 네이밍 스폰서를 맡아 17억원을 후원했고, 이후 공식적으로 인수에 나섰다.

우리카드는 오히려 러시앤캐시보다 늦게 인수 경쟁에 뛰어들었다. 게다가 인수 금액도 5억원이나 적게 책정했다. 하지만 KOVO는 우리카드를 선택했다. 제1금융권이라는 장점 덕분에 재무건전성, 인수 금액, 향후 투자계획, 체육단체 운영 및 경험, 배구발전 기여도 등 총 5개 항목에 걸친 평가 결과 1300점 만점에 1110-1055로 근소하게 앞섰다. 이사들도 우리카드의 손을 들어줬다.

인수가 확정된 뒤 우리카드는 "단순하게 한 구단이 아니라 한국 배구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남자 배구는 7개 구단 체재가 확립됐고, 더 나아가 8개 구단 창단을 목표로 뛸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국 배구의 발전을 염두에 뒀다"는 발언은 고작 3개월 만에 뒤집어졌다.

배구단 인수에 나섰던 이팔성 회장이 물러나고 이순우 회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배구단에 칼을 들이댔다. 이유는 '조직 슬림화'. 아직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배구단은 말 그대로 좋은 타깃이 됐다. 결국 인수 확정 3개월 만에 인수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미 한 차례 신용을 잃었다. 신용이 생명인 회사에서 회장이 바뀌었다고 결정된 인수를 철회한다는 것은 배구계는 물론, 팬들에게도 신용을 잃는 행동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해프닝은 일단락됐다. 여론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인수를 진행했다. 당시 주장이었던 송병일은 "우리카드라는 든든한 가족이 생겨 선수단이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모두가 뛸 뜻이 기뻤다"라는 내용의 손 편지를 이순우 회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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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일이 인수 당시 이순우 회장에게 보낸 편지.


하지만 인수와 상관 없이 이미 우리카드의 마음은 떠난 상태였다.

우리카드는 지난 시즌 4위를 차지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앞줄에 앉아있는 강만수 감독을 향해 부러운 눈빛을 보내는 감독들도 있었다. 올 시즌은 힘들 거라 예상은 했지만, 군 전역 선수들이 돌아오고 외국인 선수를 잘 뽑는다면 다음 시즌부터는 언제든 포스트시즌 진출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3월31일 우리카드는 이사회를 통해 "더 이상 구단을 운영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KOVO는 4월6일자로 우리카드를 회원사에서 임의 탈퇴할 예정이다.

더 큰 충격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7월. 팀의 주축 선수인 신영석을 현대캐피탈로 현금 트레이드했다는 점이다. KOVO도 몰랐고, 심지어 강만수 감독도, 양진웅 코치도 몰랐다. 우리카드는 상무 소속인 신영석을 트레이드하면서 1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고, 이 돈으로 구단을 운영했으니 팀이 제대로 돌아갈리 없었다. 이미 구단 운영을 접으려고 마음을 먹었다는 의미다.

신영석은 국가대표 센터다. 2011~2012시즌부터 2013~2014시즌까지 블로킹 1위를 독차지했다.

우리카드는 현대캐피탈에 먼저 현금 트레이드를 요청하면서 구단 매각을 위해 공개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 신영석이 없다면 구단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걱정했지만, 사실상 인수 기업을 찾는 것에 대해 의지가 없었다. 신영석이 없는 우리카드를 팔겠다는 것, 그것도 인수 기업이 나타난 뒤에 '신영석이 없다'고 밝히고 인수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상대를 속이는 일이다. 신용이 생명인 금융회사에서는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다.

선수들은 하루 아침에 집을 잃어버렸다. 일단 KOVO에서 위탁 관리를 하면서 새마을금고 등 네이밍 스폰서 후보를 물색하고 있다.

우리카드 배구단이 2년 만에 공중분해된 반면 우리카드에게 인수 기회를 내주고 새롭게 창단한 러시앤캐시는, OK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V-리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화끈한 투자와 연고 팬들에게 다가가는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제2금융권이라는 편견도 조금씩 깨고 있다. 제1금융권 회사와 비교되는 행보다.

우리카드, 아니 우리금융지주는 신용을 먹고 사는 회사다. 물론 배구단을 한낱 스포츠라고 작게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야 한다. 두 번이나 뒤통수를 맞은 배구계, 그리고 배구팬들은 더 이상 우리카드를 믿지 않게 됐다.
grin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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