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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3過(과속ㆍ과로ㆍ과적) 마을버스, 위태로운 130만 서민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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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서지혜ㆍ김진원 기자] 서울 성동경찰서 앞에서 승차한 25인승 마을버스 ‘성동02’번이 해발 123m의 대현산을 올랐다. 몸이 뒤로 조금 젖혀질 정도의 급경사에서 버스는 유턴에 가까운 우회전을 하는 등 곡예 운전을 이어갔다.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어린 아이에 놀란 운전기사가 급정거를 했다. 손님들은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앞 좌석의 손잡이를 잡았다.

맞은편에서 오는 같은 버스회사의 동료 기사에게 “아직 언덕길로 오르지 말아달라”는 무전을 보냈다. 좁은 길에서 자칫 마주치기라도 했다가는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꼬불꼬불한 길을 수차례 오르내린 후 인근 아파트 정류장에 도착했다.

한 시간 가까이 운전하던 A 운수 소속의 운전기사 정모(32) 씨는 “사고날 뻔한 적은 수두룩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정 씨는 “보통 주간 조는 10시간 근무, 야간 조는 12시간을 근무한다”며 “밤 시간에는 졸려서 참기 힘들고, 겨울에 길이 얼면 아찔하다”고 하소연했다.

정씨에 따르면 하루에 쉬는 시간은 10분 남짓이다. 하지만 그는 “이마저도 길이 막히는 날에는 허락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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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최근 마을버스 관련 사고가 잦아지면서 마을버스 운전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상당수의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은 하루 18시간, 주 26일의 중노동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이다. 운수업계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마을버스 운전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출근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힘겨워보인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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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발’ 마을버스가 위험하다. 운전기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경남 차원시에서는 55세 운전기사가 몰던 버스가 2차선 보호난간을 들이박고 전도돼 등굣길 학생 21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 이 버스에는 정원보다 13 명이나 많은 38 명이 타고 있었다.

지난 해에는 부산 사하구 장림동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던 16인승 마을버스가 아파트 출입구에 부딪혀 10여 명의 시민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사고 부르는 과속운전…‘많이 태우고 빨리간다’= 마을버스 사고가 잦은 이유 중 하나는 차량부족에 따른 과속운전이 꼽힌다.

서울마을버스운송조합에 따르면 지난 해 기준 서울시 마을버스 대수는 1441 대, 운전자 수는 3172 명이다.

2.2 명의 운전자가 차량 한 대를 운전하는 셈. 시내버스에 비해 운전자 수와 차량 대수가 턱없이 적지만 버스가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기대는 똑같다.

정류장에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시민들의 비난은 폭발한다. 실제로 서울마을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 민원 게시판에는 ‘배차시간을 지켜달라’ ‘노선을 연장해달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버스 특성상 도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골목길 운전이 잦은데, 과속운전을 하다보니 사고확률은 높은 게 당연하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마을버스의 사고지수는 0.423으로, 0.268인 시내버스에 비해 1.5 배 가량 사고 위험이 높다.

서울 은평구의 한 마을버스 운전자는 “이 버스 한 대에 보통 600명 정도가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루에 많게는 20시간을 일하는 날도 있는데, 사고가 안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니냐”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60대 운전자의 18시간 중노동…위태로운 과로운전= 열악한 업무환경으로 인한 운전자들의 ‘과로’도 잦은 사고와 연결된다. 실제로 마을버스 운전자들의 근무형태는 격일제와 1일2교대로 일하는데 격일제 근무의 경우 하루 18시간을 쉬지 않고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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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최근 마을버스 관련 사고가 잦아지면서 마을버스 운전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상당수의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은 하루 18시간, 주 26일의 중노동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이다. 운수업계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마을버스 운전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출근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힘겨워보인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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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의 경력 미숙도 안전을 위협한다. 현행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서울시내버스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운전경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때문에 마을버스 운전직은 운전경력이 없는 초보운전자가 연봉이 2배~3배에 이르는 서울시내버스에 취직하기 위한 통로로 여겨지는 경향이 높다.

또한 60대 이상 고령 운전자의 비율도 약 31%에 이른다. 현재 서울마을버스 131개 업체 중 40여 개 사가 적자로 운영된다. 때문에 업체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고령자를 고용하고 있다.

때문에 업계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마을버스운송조합 관계자는 “경력이 미숙한 신규ㆍ고령 운전자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18시간 안팎의 긴 시간 운전을 하다보니 위험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며 “마을버스 업체들의 경영 환경이 개선돼 운전자들의 임금을 상향조정하거나 운전자 수를 늘리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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