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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배우 김보성씨 “진정한 의리는 사랑… 나눔의 소중함 공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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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소외된 이웃돕기 실천

“고3 때 왼쪽 눈 잃고 영화 데뷔… ‘터프가이’는 왜곡”

“할 수만 있다면 슈퍼맨이 돼 차디찬 바닷속에 있던 아이들을 한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었습니다. ‘의리의 사나이’가 될 수 없었던 참혹한 현실에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배우 김보성씨(49·사진)는 세월호 참사 1년을 앞둔 31일 경향신문과 만나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의리’인데 어른들이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으니 의리를 다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번 쏜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입으로 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며 “의리는 다름 아닌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분향소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세월호 성금 1000만원은 가진 돈이 부족해 대출을 받아냈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의리 부재의 한국사회’를 개탄했다”고 말했다.

“불신의 시대, 누구도 믿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국민들의 상처는 깊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부정부패를 눈감아주는 것이 의리가 아닙니다. 의리는 공익적이어야 하며 반드시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경향신문



그가 의리를 삶의 좌표로 삼은 것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쓴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다는 뜻)’이라는 글을 우연히 접하면서다. 김씨는 20년 가까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등을 돌봐왔다. “오른손이 한 일은 오른손조차 모르게 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그의 신념을 바꿔놨다. “힘없고 소외된 이웃을 도우려면 나눔의 소중함을 공유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숨겨온 비밀도 털어놨다. 김씨는 “가죽 옷에 선글라스를 낀 ‘터프가이’의 모습은 왜곡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 3학년 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13명의 불량배와 격투를 하다가 왼쪽 눈을 실명했다고 했다. 영화계에 데뷔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고, 액션배우가 되려면 피나는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내게 보이는 세상은 ‘반쪽’입니다. 오른쪽 눈을 감으면 암흑입니다. 보잘것없는 나를 버리고 나니 곁에 이웃이 있었습니다.”

그의 진심은 ‘의리(으리)열풍’으로 이어졌다. ‘독도는 으리땅’ ‘신토부으리’ ‘꽹과으리’ ‘개나으리’ ‘꽃봉으리’ 등 패러디 작품이 쏟아졌다. 그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라면 도배·장판, 도시락 배달 등 봉사활동을 마다하지 않았고, 아프리카 굶주린 어린이를 위한 성금 56억원을 모았다.

김씨는 최근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울 남산 한옥마을 위치안내서비스(GPS)에 목소리를 기부했다. 올해 초에는 TV 출연료 2000만원을 독거노인들에게 내놨고, 지난해 말에는 남자연예인으로는 처음 고액기부자모임인 ‘사랑의 열매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진정한 의리는 사랑입니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약자를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요. 나눔이 구석구석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의리”를 외친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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