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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기숙사, 비싸서 못살겠다"…다시 자취방 찾는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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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제대 후 이번 학기 복학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 이모(23)씨는 지난달 서울 신촌의 학교 인근에 원룸을 구했다. 일주일 발품 팔아 구한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60만원짜리 방에서 그는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살고 있다. 신입생 때부터 학교 기숙사에 살아온 그는 이번엔 기숙사 신청을 아예 포기했다. 다름 아닌 ‘비용 대비 만족도’ 때문.

이씨는 “예전엔 싸서 기숙사에 살았는데, 요즘엔 기숙사비가 너무 뛰어 딱히 (기숙사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의 학교에서 신입생 위주로 선발하는 기존 기숙사는 2인실(약 4평)이 월 21만원 수준인데, 최근 완공된 신축 기숙사 2인실(6.8평)은 한 달 비용이 35만원에 달한다. 친구와 나눠 내는 월세(30만원)보다 5만원이 비싼 셈이다. 이씨는 “웬만한 신축 원룸이 기숙사보다 넓고 쾌적하고 출입도 자유롭다”면서 “요즘 기숙사비가 너무 비싸 나처럼 아예 원룸을 구한 친구들도 꽤 많다”고 했다.

서울 주요 대학들이 근래 완공한 학생 기숙사의 기숙사비가 크게 뛰면서 대학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 “돈 없는 학생들의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들썩이는 곳도 있다.
조선일보

2005년 서울의 한 여대에 입학한 학생이 가족들과 함께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짐을 옮기고 있다.


연세대에서는 올 초 총학생회가 직접 기숙사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학교 측은 부영그룹이 100억원을 들여 작년 11월 준공해 기증한 기숙사 ‘우정원’의 기숙사비를 2인실 기준 133만8000원으로 책정했다. 한 달에 35만원쯤 된다. 그러자 총학생회는 “학생들 주거권을 위해 기부 받았다던 기숙사 방 하나 쓰는 데 드는 비용이 주변 원룸 월세보다 10만원 넘게 비싸다”면서 기숙사비 인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고려대가 2011년 완공한 민자(民資) 기숙사 ‘프런티어관’도 월 39만원(1박당 1만3000원)으로, 기존 학생 기숙사(21만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비싸다.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인 이 기숙사는 남학생 414명, 여학생 529명 등 총 943명을 수용할 수 있다. 성균관대 명륜학사의 직영 기숙사와 서강대 민자 ‘곤자가 국제학사’도 2인실 기숙사비가 각각 학기당 139원, 137만원에 이른다. 한 달에 37만~38만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비싸도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학생 이동준(22)씨는 “한 달에 40만원이면 저렴한 자취방 정도는 구할 수 있고, 친구와 함께 그 정도 돈을 각자 내면 번듯한 오피스텔도 구한다”면서 “기숙사는 원래 형편 어려운 지방 학생들을 위한 것 아니었느냐”고 했다. 기숙사비가 오르면서 상당수 학생들은 인근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찾아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제주대학교 기숙사 모습.


학부모들의 불만도 거세다. 대학생 아들 딸을 하나씩 둔 주부 이성희(47)씨는 “딸은 안전이 걱정돼 어쩔 수 없이 기숙사에 살게 했지만, 아들은 원룸을 하나 구해줬다”면서 “우리 대학 때와 비교해보면 물가를 감안해도 기숙사비가 터무니없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자신을 대학생 학부모라고 밝힌 한 네티즌도 “안 그래도 등록금 때문에 힘든데 처음 기숙사 홈페이지에 뜬 기숙사비를 보고선 식권 수십장이 포함돼 있는 줄 알았다. 시설 좋은 민자 기숙사라 해도 원룸과 가격 차가 거의 차이가 없다면, 차라리 부모가 종종 들여다볼 수 있는 원룸이 낫다”고 했다.

학교 측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신축 기숙사, 특히 민자로 지어진 기숙사는 시설 운영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고 기존 기숙사와의 차별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마디로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학교는 학생들의 형편과 비난 여론을 감안해 장학금으로 학생들의 기숙사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건국대는 민자기숙사인 쿨하우스(KU:L HOUSE)를 운영하는 민간 운용사와 함께 4억2000만원의 장학기금을 마련, 매년 기숙사 학생 470명에게 기숙사비 전액 또는 반액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다. 쿨하우스의 2인실 기숙사비는 학기당 142만8000원이다.

현재 국회에는 기숙사비 인하 관련 법안들이 발의돼있다.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5일 모든 대학의 기숙사 건립에 부가가치세 영세율(세금 부과 대상에는 포함하되 세율을 0%로)을 적용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학에 세제 혜택을 주면서 학생들의 부담을 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 대학 학생회들은 “학교가 기숙사 제공을 학생들을 위한 주요 복지 서비스로 인식하지 않는 이상, 이런 법안들이 실제 기숙사비 인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한다.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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