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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하나금융, 론스타에 400억 '배상 면책' 약속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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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건에 따라 배상액 나눠 지급하기로 확약서 주고 받아

올 초 외환은행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400억원가량의 돈을 송금했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00억원에 인수한 뒤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면서 4조6600억원의 차익을 남기며 ‘먹튀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외환은행 매각 지연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4조6000억원짜리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를 제기하고, 국내 세무서를 상대로 세금 소송까지 내는 등 한국에서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받아가기 위해 소송전을 불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은행이나 통합을 앞둔 하나금융지주는 론스타에 400억원을 지급한 사실이 알려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이들은 왜 아직 론스타에 얽매여 있는 것일까.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400억원의 돈을 내 준 것은 2003년에 있었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관계사인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주가를 고의로 낮추면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당시 외환카드 주주들은 주식을 헐값으로 매각해 손해를 봤다며 론스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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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검찰이 대출 가산금리 부당 인상 혐의와 관련해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이진한 기자


대표적인 것이 2008년 외환카드 2대 주주이던 올림푸스캐피탈이 싱가포르 국제중재재판소에 론스타와 외환은행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것이다. 예상대로 이 소송에서 올림푸스 캐피탈이 이겨 론스타는 약 718억원을 올림푸스캐피탈에 배상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가 조작을 한 것이 론스타이기 때문에, 배상액을 그들이 물면 그만인 것이다. 실제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은 2011년 국내 법원에서 유회원 전 론스타어드바이저코리아 대표가 징역형 확정 판결을 받아, 론스타에 죄가 있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함께 기소됐던 외환은행 법인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 론스타는 이 배상액은 외환은행이 지급할 몫이라며, 2012년 외환은행을 상대로 싱가포르 고등법원에 소송을 건다. 유죄인 론스타가 무죄인 외환은행에 돈을 대신 내라고 한 것이다. 은밀하게 진행된 중재 재판에서 외환은행은 결국 718억원의 절반가량인 400억원을 론스타에 송금해 버리고 일을 매듭지어버렸다. 그리고는 입을 굳게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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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론스타코리아 대표 유회원씨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뒤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


하나금융지주-론스타 간 배상 면책에 대한 확약서 있었다

왜 무죄인 외환은행이 유죄인 론스타에 돈을 물어줬을까. 나중에 이일로 외환은행장은 검찰에 배임 혐의로 고발까지 되는데도 일을 은밀히 진행했다. 비밀은 2011년 12월 외환은행을 인수했던 하나금융지주와 론스타 간 확약(確約)서에 있었다.

양측은 그해 12월 최종계약서를 작성하며 우발채무인 소송액에 대한 손해 배상을 분담한다는 내용의 확약서(assurance letter)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외환카드 주가조작과 관련해 국내 법원의 판단이 끝난 상황이었지만,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무리한 약속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확약서의 존재가 처음 언급된 것은 2012년 2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다. 이때는 하나금융이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사들여, 자회사로 편입시킨 지 한 달 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속기록을 보면 이성남 전 민주당 의원이 “금융위 자료를 보니 싱가포르 국제중재 손실과 관련해 50%만 외환은행이 지급하는 것으로 가정해 놨다. 감자설 유포로 주가 조작한 것은 외환은행인데 왜 외환은행이 지급하는 것으로 해 놨는지 알 수 없으며, 나머지는 누가 지급하는지 모르겠다…론스타로부터 우발 채무 부담에 대해서 확약서 같은 것을 받았느냐”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권혁세 당시 금융감독원장이 “예, 하나지주에서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론스타가 (우발채무와 관련해) 하나지주에 ‘어슈어런스 레터’(확약서)를 제출했다”고 답한다.

당시 맥락을 확인하기 위해 이성남 전 의원과 통화를 했다. 이 의원은 “당시 외환은행이 싱가포르 국제중재 손실과 관련해 50%를 지급하는 것으로 자료가 처리돼 있는데, 누가 나머지를 지급하는지 명시하지 않아 그런 질문을 한 것”이라고 했다. 즉 50%는 외환은행이 지불하고, 나머지는 누가 부담하느냐는 것이 이 전 의원의 질문 요지였고, 권혁세 원장은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가 주고받은 ‘확약서’로 대답을 대신 한 것이다. 이는 확약서에 싱가포르 718억원 배상과 관련, 론스타와 외환은행이 배상을 분담하기로 한 것이 적혀 있다는 뜻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시는 현재와 같이 이 사안이 관심을 끌지 않았기 때문에, 권 전 원장이 대답을 쉽게 했던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외환은행이 400억원을 론스타에 송금한 것과 관련해, 금융위와 금감원, 하나금융지주, 외환은행 등 관계자들은 모두 입을 닫고 있다. 외환은행이 돈을 송금했다는 것만 인정할 뿐 그 이유에 대해선 모두 함구하고 있다. 중재 사안이 비밀에 해당하는데다, 이것이 향후 있을 론스타와의 ISD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 간 확약이 국내 법원 판결을 뒤집는 것인데다, 이를 금융당국 또한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상당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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