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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인터뷰]김호정 “기왕 연기할 것, 처절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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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속 죽어가는 아내 역 “고통스러운 연기, 내 삶 투영”

“연기 잘했다고요? 다른 분들이 도와줬죠”

“‘풍문으로 들었소’ 현장, 신인으로 돌아간 듯”

스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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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어렸을 때 몇몇 인터뷰에서 ‘배우가 자신의 삶을 투영해서 연기하는 거죠!’라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걸 진짜 행동으로 옮길 때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난 고통스러운 연기는 안 할래!’라며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게 옳은 것인지 고민했죠.”

배우 김호정(47)에게 ‘배우라면 냉정하게, 또 이성적으로 연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김훈 작가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을 읽고 매료됐고, 임 감독과 함께 오상무의 아내 역할을 제대로 표현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 이왕에 연기하는 것, 아주 처절하게 보여주자!”는 욕심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호정은 재작년 한 편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었다.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4월 9일 개봉 예정)이었다. 죽어가는 아내(김호정)와 연정을 품고 있는 젊은 여자 추은주(김규리)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한 중년 남자 오상무(안성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임 감독의 영화이기에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거절해야 했다.

투병하다가 죽는 아내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병마와 싸우며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과거의 아픔을 다시 끌어내기는 부담스러웠다. 완치된 그가 “과거의 아픔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다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거절하고 예정된 장기 외국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화장’과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여행 중 ‘화장’ 측이 다시 연락을 해왔다. 결국 선택을 번복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영화 촬영 현장. 시작부터 고민을 많이 했으나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편했다. 지난 2011년 영화 ‘나비’로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 청동표범상(여우주연상)을 따낸 연기 실력이 잠시 쉬었다고 어디 갔겠는가. ‘화장’ 속 연기, 특히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화장실 신(쇠약한 아내는 용변을 처리하지 못해 남편에게 도움을 받고, 몸을 씻겨주는 남편에게 수치심과 함께 미안함을 느낀다. 두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남자의 심리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아내의 상황이 관객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에 대해 칭찬하자 김호정은 겸손해했다.

그는 “감독님부터 안성기, 김규리 등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배려하고 잘 챙겨줬다”고 즐거워했다. 이어 “내지르는 건 배우라면 다 가능하다. 어려운 게 아니다. 입체적으로 살아있는 인물처럼 설득력 있게 연기했을 뿐”이라며 “오히려 안성기, 김규리 등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기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내면의 갈등 등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고 공을 돌렸다.

촬영 현장에서 대부분은 김호정이 아팠던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영화의 모더레이터로 나선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실수로 언급됐고, 현장은 눈물바다로 바뀌었다. 당시 그의 투병기와 함께, 전라 노출 연기도 화제가 됐다. 김호정은 힘든 신을 잘 마무리했는데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이슈가 될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연기에 몰입했을 뿐인데…. “내 노출로만 된 영화가 아닌데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화장실 신은 전라 촬영이 예정돼 있지 않았다. 김호정을 그대로 본떠 만든 더미 인형이 존재했다. 뼈와 가죽만 남아있는 모습을 위해서였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해 앙상한 아내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임 감독은 “배우의 연기로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김호정의 연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힘든 촬영이었는데 단번에 촬영이 마무리됐다. 김호정은 “죽어가는 아내 역할을 위해 뭔가를 꾸미거나, 계산해서 연기하진 않았다”고 떠올리며 “관객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건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화장’에서의 내 연기가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화장’에 참여하는 시간은 고민과 생각의 연속이었다. 출연을 거절한 일부터 화장실 신 촬영, 자극적인 노출 기사 등등. 어려운 결정이기에 혼자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스스로를 믿고 따랐단다. 가족들에게도 ‘화장’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모든 건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산에서도 관련 기사가 쏟아지면서 지인들에게 수백 통의 문자와 왔는데, 가족은 연락 한 번 없었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는 “지인들이 네가 외국에서도 검색어 1위라고 하더라”라고 의연해했다. 이미 가족은 김호정의 고통을 알고 있고, 최근 공연한 몇몇 연극에서도 과거의 슬픔과 아픔을 표현했던 바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고 즐거운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는 김호정. 현재 촬영 중인 SBS 월화극 ‘풍문으로 들었소’ 현장이 무척 즐겁고 행복하다. 11년 전 드라마 ‘12월의 열대야’에서 신성우의 소울메이트로 출연했었을 때와는 또 기분이 다르다. 그는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갔다”며 만족해했다. 과거에는 TV가 자신과 안 맞는다며 도망치듯 연기하고 나왔다는데,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풍문으로 들었소’를 연출하게 된 안판석 PD에게 연락해 “출연시켜 달라”고, “단역이라도 좋으니 함께 연기하고 싶다”고 졸랐다. 비중이 그리 높진 않지만, 합류할 수 있었고 현장에 잘 동화되고 있다. “아프고 나서 더 절실해 지더라고요. 자기가 하는 일을 누구나 다 소중하다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행복하게, 또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웃음)”

jeigu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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