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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일선 형사들 ‘수사권 싸움’ 검사에 판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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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경찰에 전례 없는 ‘촉탁수사’ 공조 요청… 경찰청은 “접수하라” 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없는 나쁜 선례” 수사 지휘 거부

대검 “수사 지휘에 무리 있다” 회신… 사건 회수로 종결

서울 강동경찰서 형사들이 전례없는 수사권 다툼에서 검찰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뒀다. 그러나 정작 상급기관인 경찰청은 “검사의 지휘를 따르라”고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경찰 내부통신망에는 ‘검사의 부당한 수사지휘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강동서 소속 경찰관이 쓴 이 글은 경찰청 도움없이 검사의 부당한 지휘를 철회시킨 ‘무용담’을 담고 있다.

29일 이 글에 따르면 발단은 이달 중순쯤 서울의 한 검찰청이 강동서에 참고인 조사를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강원도의 한 검찰청이 서울지역 검찰청에 촉탁수사를 요청한 건이다. 촉탁수사란 다른 지역에 주거지를 둔 수사 대상자를 조사할 때 관할 수사기관에 대신 조사를 요청하는 것이다. 보통 검찰은 검찰에, 경찰은 경찰에 촉탁수사를 요청하는 게 관행이자 원칙이다. 전례없는 공조 요청에 강동서는 경찰청에 처리 지침을 문의했다. 경찰청은 “전체적으로 검사 지휘사건이기 때문에 경찰에서 접수해 수사를 해주는 게 맞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러나 강동서 경찰관들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도 없는 내용을 검찰 뜻대로 따라주면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고 입장을 정리한 뒤 독자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강동서 수사지원팀장은 경찰청 수사연구관실 하급 실무자와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관련 규정도 여러 차례 검토했다. 강동서는 수사를 지휘한 검사에게 “대통령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수사지휘 범위와 사건의 단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건번호도 부여되지 않은 사건이라 접수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서너차례 의견을 교환한 뒤 담당검사는 부장검사와 논의해 대검찰청에 질의서를 보냈다. 대검은 ‘검찰 내부 촉탁수사를 경찰로 지휘할 수 있는지 여부가 규정된 바 없어 수사지휘에 무리가 있다’는 회신을 보냈고, 검사는 즉시 사건을 회수했다.

이 일이 알려진 뒤 경찰 내부통신망에는 “경찰청은 수사구조 개혁, 아니 경·검 관계의 개선에 관한 최소한의 의지라도 있는가요” 등 본청 수뇌부를 비난하는 댓글이 쇄도하고 있다.

경찰청은 2011년 대통령령 제정을 앞두고 본청 산하에 경무관급 고위 간부를 단장으로 하는 수사구조개혁단을 만들어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집중 검토했다. 현재 이 조직은 수사국 산하 수사연구관실로 축소돼 있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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