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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美 여성, 고액연봉 버리고 가정에 돌아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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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와이프 2.0' 저자 에밀리 맷차 인터뷰]

집안일 즐기는 여성 삶 들여다봐… 70年代 페미니스트에 비판받기도

"요리·육아… 과거로의 후퇴 아냐, 먹거리·교육 불신에 직접 나선 것"

"유리 천장, 그걸 왜 뚫어야 하지?"

이 당돌한 말을 들은 건 5년 전 스웨덴에서다. 유리 천장 뚫고 임원 아니, 최고경영자 되는 것이 모든 커리어우먼의 꿈이라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번엔 미국이다. 기업의 유능한 여성들이 고액 연봉을 내던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행진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하우스와이프 2.0'(미메시스)은 미국 사회에 불어닥친 '새로운 가정의 시대'에 여성들 의식과 삶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들여다본 책이다. 지난 24일 홍콩에서 만난 저자 에밀리 맷차(33)는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워싱턴포스트, 애틀란틱, 론리플래닛 등에 글을 쓰는 작가. 맷차는 "요즘 20대 뉴요커들은 주말 저녁 클럽에 가기보다 집에서 구운 빵과 케이크를 블로그에 자랑하고, 명문대 MBA를 졸업한 여성들은 높은 연봉의 직장을 버리고 태양열 오두막집에 들어가 농사 짓고 뜨개질하며 사는 방식을 선택한다"며, "이는 단지 옛날로의 회귀나 후퇴가 아니다"고 했다.

조선일보

한국판으로 번역된‘하우스와이프 2.0’을 들고 홍콩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하는 에밀리 맷차. 작가이지만 케이크 굽고 요리하는 걸 즐기는 맷차는“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면 요리와 집안일을 기꺼이 즐기는 남자를 선택하라”며 짓궂게 웃었다. /홍콩=김윤덕 기자


"나를 포함해 많은 여성들이 요리와 뜨개질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커리어우먼이었던 내 어머니는 그런 일들을 시간낭비라며 비웃었지만 요리는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즐거움이었어요. 나 말고도 수많은 20~30대 여성들이 집안일에 매력을 느끼고 빠져들었죠. 육아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직장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집안일이 좋아 기꺼이 사표를 쓰고 돌아오는 여성들이 빅 트렌드를 만들어갔습니다."

하찮은 일의 대명사였던 집안일에 여성들은 왜 뛰어드는 걸까. 그 이유가 궁금해 1년 동안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컴백홈' 주부 200여 명을 인터뷰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죠.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 있는 사람들이 머리가 아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의욕이 충만해진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DIY 문화 열풍이죠. 먹거리나 환경, 교육에 대한 극도의 불신도 여성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정체불명의 가공식품을 내 아이, 내 가족에게 먹일 수 없다는 거죠. 자연주의에 매료된 사람들은 텃밭을 만들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집에서 출산을 하고 천 기저귀, 모유 수유를 고집하고요. 홈스쿨링은 제도권 교육에 반기를 든 여성들의 저항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큰 전환점이 됐다. "직장이 내 인생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죠. 언제든 잘릴 위험이 도사린다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결단합니다."

책은 페미니스트들 사이 논란을 일으켰다. 1960~70년대 활동한 구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운동의 성취를 후퇴시킨다고 비판했다. 젊은 세대들은 달랐다. "요리와 뜨개질, 육아가 여성스러운 일이라고 해서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성(性)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진정한 페미니즘이라는 거죠. 성 평등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다니기 싫은 직장을 억지로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건 말이 안돼요."

하지만 일을 안 해도 될 만큼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여성들에게나 가능한 일 아닐까? 맷차는 "집으로 돌아온 여성들 중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도, 아주 부자인 사람도 없다. 적게 버는 만큼 희생을 감수한다. 자동차를 팔거나, 여행을 가지 않거나, 사립학교를 포기하거나"라고 답했다.

맷차는 "산업화 이전까지 가사노동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해온 일"이라고 말했다. "남자들이 뜨개질을 안 할 이유가 없고 케이크를 굽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아이를 돌보는 것조차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잘할 수 있어요." 홍콩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남편 때문에 미국과 홍콩을 오가는 맷차는 "요리, 청소 등 집안일을 절반씩 분담한다"고 했다. "결국은 남녀 모두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때 행복하죠. 그러려면 남자들이 지금보다 더 가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뭣보다 기업이 여성과 가족에 더욱 관대한 문화를 만들어야겠죠."



[홍콩=김윤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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