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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가계부채 '2019년 공포' 줄었지만 … 돌아올 청구서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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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조 증액 후유증 없나

정부 “비상 상황엔 비상 대책 필요

분할상환 10% 늘게 돼 리스크 감소”

정부·한은·은행, 금리 손해 떠안아

중산층만 혜택 … 소외층 불만 거세

중앙일보

“비상 상황에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가계부채의 ‘뇌관’을 해체해 놓는 게 더 급하다.”

정부가 안심전환대출 한도를 당초 예정보다 늘리기로 한 29일, 금융위 관계자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안심전환대출은 정부가 주도한 ‘정책상품’이다. 신청자를 유혹한 연 2.6% 안팎의 매력적인 금리 역시 정부가 ‘만들어낸 것’이다. 금리가 낮춰진다는 건 대출자의 비용과 위험을 누군가가 떠안았다는 의미다. 이번엔 은행과 정부, 한국은행이 부담을 나눠 졌다. 덕분에 가계부채의 질은 좀 나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남은 ‘청구서’ 부담에다 ‘형평성 논란’까지 거세지면서 후유증은 두고두고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이런 부담을 감수하면서 안심전환대출 설계와 판매에 나선 이유는 이른바 ‘2020년 위기설’ 때문이다. 국내 가계부채는 규모와 증가 속도도 문제지만 쏠림이 심하다는 게 더 큰 고민거리였다. 은행권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위험도가 높은 변동금리나 이자만 갚은 대출이 75%가량이다. 2019년부터는 원금 상환을 미뤄 온 대출의 만기가 집중적으로 닥치기 시작한다. 더욱이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짊어진 베이비부머의 은퇴도 본격화한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저성장이 지속되면 가계부채 위기가 2020년부터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여기에 단기적으론 ‘금리 충격’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속도로 가계부채가 늘어난 상황에서 당장 올 하반기 미국을 시작으로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가계 부실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위험을 인식한 금융당국은 1년여 전부터 ‘가계부채 구조 개선’ 방안을 준비했다. 변동금리·일시상환대출의 비중을 낮추고 고정금리·분할상환의 비중을 높이는 게 핵심이었다. 관건은 ‘금리’를 최대한 낮출 수 있는 구조였다.

이를 위해 먼저 은행이 고정금리·분할상환대출을 팔면 그 채권을 주택금융공사가 사들이도록 했다. 주금공은 대출 채권을 바탕으로 유동화증권(MBS)을 발행한다. 그리고 이 증권은 은행들이 다시 사들이도록 했다. 은행 입장에선 기존 고금리 대출을 주금공이 발행하는 저금리 증권과 맞바꾸는 셈이다. 금리는 손해 보지만 떼일 위험은 확 준다. 은행 대신 대출금을 떼일 위험을 지는 주금공을 위해 정부와 한은이 자본금을 늘려주기로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9일 “추가 한도 20조원은 주금공의 자본 여력상 공급 가능한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금리 손해가 커진 은행도 울상이다.

40조원 한도가 소진되면 국내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에서 고정금리·분할상환대출의 비중은 현재보다 10%포인트가량 올라간다. 정부는 원금을 갚아 가는 가계가 늘면서 가계부채 규모도 매년 1조1000억원씩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은행권 대출 이용자인 중산층이 흔들리는 이른바 ‘시스템 리스크’를 덜어내는 작업이 상당히 진척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런 무리를 한 혜택이 결과적으로 소득·신용 수준이 높은 은행권 이용자, 그중에서도 원리금 상환 여력이 있는 계층에 집중적으로 돌아간 것을 놓고도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특히 이번 대책에서 소외된 제2금융권 대출자들의 불만이 거세다. 정부는 “디딤돌대출·바꿔드림론 등 기존 서민 지원 상품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안심전환대출로 높아진 눈높이를 채우기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정부 한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증액 등으로 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해결해 줄 것이란 잘못된 신호가 전달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아직 제거하지 못한 가계부채 ‘뇌관’도 여전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농협·신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권의 토지·상가담보대출이다. 은행권에 비해 대출 관리가 덜 엄격했던 데다 담보가치 평가 기준도 제각각이라 ‘숨겨진 폭탄’으로도 불린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이 대출을 본격적으로 죌 계획이라 여기저기에서 ‘비명’도 터져나올 전망이다. 금융위는 27일 관계부처와 상호금융정책협의회를 열고 상호금융권의 부동산 담보대출비율(LTV) 적용 방식을 은행권 수준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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