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속이 더부룩, 답답한데 내시경 검사는 멀쩡 … 꾀병 아닙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의학의 재발견-기능성 소화불량

중앙일보

경희대한방병원 류봉하 교수가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의 복부 혈자리 중완(배꼽과 명치 사이)에 침을 놓고 있다. 신동연 객원기자


“위 내시경검사 결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계속 윗배가 답답하고 조금만 먹어도 배가 더부룩해요. 약을 먹어도 그때뿐이고요.” 50대 주부 이미향(가명)씨에게 소화불량은 만성질환과도 같다. 이씨는 10년 넘게 소화불량을 앓아 왔다. 병원을 전전하며 각종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병명은 ‘기능성 소화불량’. 경희대한방병원 한방내과 류봉하 교수는 “기능성 소화불량은 전체 인구의 15~25%가 앓고 있을 정도로 감기보다 흔한 질환”이라며 “치료가 까다로워 꾀병·화병·신경성질환으로 오해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35년간 기능성 소화불량의 치료·연구에 몰두해 온 류 교수에게 한의학적 해석과 치료에 대해 들었다.

오경아 기자 oh.kyeongah@joongang.co.kr

윗배 답답하고 팽만, 구토·속쓰림 증세까지

우리나라에서 소화불량은 유독 흔한 증상이다. 류 교수는 식생활에서 이유를 찾는다. 그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맵거나 짠 자극적인 음식을 즐겼고, 불규칙한 식습관을 지녀 소화불량이 빈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옛 선조는 위에 좋은 약재와 침·뜸 등 우리 민족 체질에 맞는 다양한 치료법을 개발하는 등 한의학적 치료술을 발전시켜 왔다”고 덧붙였다.

소화불량은 크게 기질적·기능성 등 두 가지로 나뉜다. 기질적 소화불량은 위염·위궤양·위암·십이지장궤양 등 특정 질환에서 온다. 반면에 기능성 소화불량은 내시경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고 다양한 복부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된다. 한의학에서는 ‘음식상(飮食傷)’ ‘식울’ ‘식적(食積)’ 등으로 표현한다. 주로 윗배가 답답하거나 아프고 조금만 먹어도 금세 배가 부르다. 복부 불쾌감과 팽만감·습관성 트림·속쓰림·구토·식욕부진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류 교수는 “소화불량 증세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50% 이상이 기능성 소화불량”이라며 “만성화하면 치료기간이 길어지고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담이 가슴에 몰려 가슴이 답답한 ‘담적(痰積)’을 소화불량과 혼동하기도 하는데 담적은 가래·기침을 동반하는 호흡기질환으로 엄연히 다르다”고 덧붙였다.

유전·스트레스·음식 등 소화불량 원인 다양

원인은 다양하다. 한의학에서는 내부 요인에 의한 병, 즉 ‘내상병(內傷病)’으로 분류한다. 선천적으로 소화기 기능이 약하거나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장기간 쌓인 경우, 다른 장기에 이상이 있거나 자극적인 음식, 불규칙한 식사, 술·약물·스트레스에 노출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 기혈 부족, 위에 정체된 담음(체내 진액에서 생긴 노폐물), 위장 진액의 부족, 어혈(피가 정상적으로 순환하지 못해 맺혀 있는 것) 등이 소화를 방해하기도 한다.

류 교수는 “기질적 소화불량은 원인이 되는 질환을 치료하면 증상이 개선되지만 기능성 소화불량은 원인이 다양하고 명확한 기전이 밝혀지지 않아 치료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위산억제제·위장운동촉진제 등 일반적인 소화제는 기능성 소화불량에 100% 만족할만한 효과를 보이지 않아 근본적인 치료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약으로 위장 보하고 침으로 막힌 기혈 뚫어

한의학에서는 기능성 소화불량의 다양한 병인과 환자의 증상·체질을 고려해 맞춤형 처방을 내린다. 소화기능 자체가 약한 ‘비위허약’ 유형에는 기운을 보충하는 처방을, 어혈로 인한 ‘어혈정체’ 유형에는 혈액순환을 돕는 처방을 내리는 식이다. 증상 개선뿐 아니라 소화 관련 장기(비위)를 튼튼하게 하고, 다른 장기와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치료를 한다. 류 교수는 “원인이 다양한 만큼 다각도로 접근해 치료 방향을 설정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치료 방편은 한약과 침이다. 필요에 따라 뜸·기공·추나요법·전기침요법 등을 병행한다. 한약은 환자의 증상·체질에 따라 세분화해 처방한다. 소화불량의 가장 기본적인 처방은 진피·창출·후박 등으로 구성된 ‘평위산’이다. 증상이 심한 경우엔 산사·맥아·신곡 등이 들어간 ‘내소화중탕’, 위가 허약한 경우엔 인삼·황기·감초 등이 포함된 ‘사군자탕가미방’을 처방한다.

침은 배꼽과 명치 사이인 ‘중완’, 무릎뼈 바로 아래쪽의 ‘족삼리’, 엄지와 검지 사이의 ‘합곡’ 등에 놓는다. 모두 위장과 연결된 혈자리다. 막힌 기혈을 뚫어 순환을 돕고 위장관 운동을 활성화한다. 복부에 쑥뜸 치료를 병행하면 차가운 복부가 따뜻해져 소화기의 움직임이 원활해진다. 기공요법은 체력을 단련하고 소화력을 높인다.

기능성 소화불량은 재발 위험이 크다. 류 교수는 “치료를 마친 뒤에도 자신의 체질과 발병 유형에 맞는 섭생법을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과식하지 않는다. 식사 후 눕지 않고 배를 문지르며 서서히 걷는다. 밀가루 음식·우유·술·기름진 음식은 소화불량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피한다.

중앙일보

Tip 기능성 소화불량의 유형별 한방치료 방향

비위허약(脾胃虛弱)

증상=몸이 마르고 허약. 적게 먹어도 복부가 항상 더부룩하고 트림도 시원하지 않음.

치료=소화기능 자체가 약함. 비위의 기운을 보충해 소화기능을 튼튼하게 함.

간위불화(肝胃不和)

증상=생각·걱정이 많아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 잦아. 상복부에서 옆구리까지 팽만하고 아픔.

치료= 막혀 있는 간의 기운을 소통시켜 소화기능 원활하게 함.

심비양허(心脾兩虛)

증상=마르고 안색이 창백.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 숨이 가쁘고 어지러움.

치료=근심·걱정이 과도해 비장의 기, 심장의 혈이 부족. 심비의 기혈을 보충해 소화기능 보강.

위음부족(胃飮不足)

증상=먹으면 복부가 답답하고 구토·속쓰림·변비 증세.

치료=위장의 진액이 부족해 소화불량 발생. 위음을 보충해 소화기능 원할하게 함.

위장정음(胃腸停飮)

증상=복부에서 소리가 많이 나고 메스껍거나 맑은 물을 토함.

치료=위장 내 담음이 원인. 정체된 담음을 제거해 소화기능 정상화.

어혈정체(瘀血停滯)

증상=은은하게 아프거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복부에 발생.

치료=어혈로 인한 소화장애. 정체된 어혈을 순환시켜 제거.

자료 : 경희대한방병원 류봉하 교수

오경아 기자 oh.kyeongah@joongang.co.kr

▶오경아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okafmjmp/

[ⓒ 중앙일보 : DramaHouse & J Content Hub Co.,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