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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애국가 작사자 다시 논란… “윤치호설이 가장 신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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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연구가 박대헌씨, 1903년 제작된 ‘애국충성가’ 위작 주장

흥사단은 오는 31일 국회도서관서 ‘애국가 작사자 연구 발표’

애국가 가사의 작자는 지금까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광복 70주년이 되도록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할 뿐이다.

오랜 시간 유력했던 것은 좌옹 윤치호(1865~1945) 작사설이다. 미국 에모리대에는 윤치호가 1945년 9월 딸에게 직접 써주었다는 애국가 가사지가 소장돼 있다. 가사 말미에는 ‘1907년 윤치호 작’이라고 쓰여 있다. 윤치호의 유족은 고인이 석사 학위를 받은 에모리대학에 이 가사지를 기증했다.

윤치호설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는 1908년 재판이 발행된 노래집 <찬미가>다. 윤치호가 펴낸 이 책에는 ‘애국가’의 가사가 수록돼 있다.

경향신문

윤치호(1934년 일흔 살 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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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가 쓴 애국가. 1907년 작사한 것으로 현재의 가사와는 군데 군데 다른 곳이 보인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애국가를 작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또 하나의 인물은 도산 안창호(1878~1938)다. 도산의 유족과 지인 등은 생전의 도산이 애국가 가사를 지은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고 책, 언론 등에서 술회한 바 있다. 1907년 3월20일자 대한매일신보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안창호가 만리현 의무균명학교 학생들과 매 조회 때마다 애국가를 부른다”는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두 가지 설에는 모두 약점이 있다. 우선 ‘안창호 작사설’은 구체적 문헌, 자료 없이 증언, 정황으로만 뒷받침된다는 사실이다.

‘윤치호 작사설’은 윤치호라는 인물이 논란거리다. 1890년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선발될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던 윤치호는 젊은 시절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1911년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105인 사건)에 연루돼 3년의 옥고를 치른 뒤 친일파로 변신했고, 해방 직전에는 일본제국 귀족원 의원에 선임될 정도로 높은 자리에 올랐다. ‘윤치호 작사설’이 맞다면,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친일파 거두의 가사를 국가로 불러온 게 된다.

지난해 7월12일 방영된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는 또 하나의 가설을 내놓았다. 1903년 제작된 필사본 <기설>에 수록된 ‘애국충성가’와 1904년 제작된 서예작품 ‘갑진 한시 애국가’가 현재의 애국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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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제작된 필사본 에 수록된 ‘애국충성가’. 박대헌씨 제공


이는 서지학자 안춘근이 1981년 언론에 발표한 내용으로, SBS 제작진이 다시 조명했다. 이 사실이 맞다면 ‘1907년 윤치호 작사설’은 기각되며, 애국가 작사가는 다시 미궁에 빠진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애국가가 특정인의 작사가 아닌, 1890년대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집단 창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낸다.

고서연구가인 박대헌 완주책박물관 관장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다시 반박한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논문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 <애국가 작사 미스터리>의 논쟁에 대한 고찰”에서 그는 안춘근의 ‘애국가 자료 3종’이 모두 후대에 위조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 관장은 소장자를 찾아 <기설>을 직접 확인한 뒤, ‘애국충성가’의 글씨체, 먹 색깔, 글씨 수준이 책에 실린 다른 가사와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갑진 한시 애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글씨의 크기, 구도, 함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과의 관계 등으로 추정해볼 때 최근 위작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 관장은 안춘근이 발표한 다른 애국가 자료인 ‘송암 김완규 애국가’ 역시 ‘가짜 글씨’라고 판정한다. 박 관장은 “(안춘근이 3종의 애국가 자료를 공개한) 1980~1990년대는 이중섭 등 유명 화가와 민화 등의 가짜 그림이 대량 유통되는 시기”였다며, 위조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흥사단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애국가 작사자 연구발표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는 안창호설, 윤치호설, 공동작사설 등이 모두 발표될 예정이다. 흥사단 관계자는 “특정 설에 힘을 싣기보다는, 여러 주장의 합리성을 고루 살피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관장은 “역사는 객관적 자료가 말해주는 것”이라며 “현재까지의 자료를 따지면 윤치호설이 가장 신빙성 있다”고 말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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