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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터키의 자유에 대한 열망 음악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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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음악제 참가 작곡가 파질 사이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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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반정부 시위는 민주주의에서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건이죠. 터키 작곡가인 저는 음악을 만들어 표현할 수 밖에요.”

27일 개막한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터키 출신의 파질 사이는 음악제를 통해 국내 초연되는 자신의 작품 ‘게지파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그는 자유로운 곡 해석과 가공할만한 연주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최근에는 작곡가로 더 왕성하게 활동해 터키 전통음악을 유럽 음악에 녹여낸 독특한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28일 바젤 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 후 대기실에서 만난 그는 “10년 전 서울 방문 이후 두 번째 한국방문인데도, 터키와 비슷한 점이 많아 고향에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오늘 연주요?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굿’(웃음)이에요. 청중 반응도 뜨거워서 연주할 힘이 나죠.”

그는 이번 음악제 기간 동안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과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등 자신의 특장을 살린 대표곡들을 연주하는데 이어 자작곡 ‘나즘’ ‘검은 대지’ ‘사이트 파이크’ 등을 국내 초연한다. “작곡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적어둡니다. 제 음악의 결정체를 선보인다는 생각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했죠.”

연주 잘 하는 작곡가로 알려졌던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치르게 된 것은 2012년 중세 무슬림 시인 오마르 카이얌의 시를 인용해 이슬람을 비판하면서부터. 카이얌이 무슬림이 죽어서 가는 낙원을 ‘포도주가 흐르고 처녀들이 반길 것’이라고 묘사한 4행시를 두고 “(이슬람)낙원에 술집이나 매춘굴이 있는가”라고 비판했고, 이듬해 터키 법원은 이를 신성모독죄로 인정해 그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독실한 무슬림 에르도안 총리와 집권당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던 사이는 그 일로 2014년 예정됐던 안탈리아 페스티벌 감독직에서도 퇴출됐다.

그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했지만 “센 음악이라 할 말한 작품을 몇 곡 썼다”고 덧붙였다.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에서 국내 초연되는 게지파크 3부작이 그 중 하나다. “2013년 게지파크 시위는 그 해 터키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됐죠. 전 정치적으로 말하지 않고,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습니다.”

1부는 피아노 두 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2부는 독주 소나타, 3부는 소프라노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각각 게지파크 시위 전, 시위 과정에서 드러난 사람들의 욕망, 시위 후 풍경을 담았다. 이번 음악제에서는 2,3부가 초연되며, 파질 사이가 직접 연주한다.

다른 자작곡에서도 터키 색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29일 리사이틀에서 연주하는 ‘나즘’은 터키 작가 나즘 히크메트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오라토리아 ‘나즘’ 일부를 피아노 독주로 편곡한 작품, ‘사이트 파이크’ 역시 터키 근대문학의 뿌리로 평가받는 작가의 단편 소설에서 영향을 받아 작곡한 작품이다. “터키 출신이니 클래식 음악을 작곡할 때에도 터키 음색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죠. 중요한 건 터키와 유럽 음악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에요.”

터키는 서양의 평균율이 아니라 미분음을 포함하는 다른 조율 체계를 사용한다. 현대 피아노로 터키 음악의 특색을 드러내려면 기존의 서양 악기를 다른 방식으로 울리도록 조율하는 것이 핵심. 이번 음악제에서 두 번 선보인 ‘검은 대지(Black Earth)’는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현을 함께 건드리며 터키 전통 현악기인 사즈의 소리를 표현했다.

“더 많은 것을 음악에 담고 싶은 충동을 느끼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중요한 말이라면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파질 사이와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홍콩 신포니에타가 협연하는 게지파크 3부작 초연은 31일, 통영국제음악제는 내달 5일까지 열린다. (055)645-2137

통영=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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