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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일어나세요, 축구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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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 백혈병 이광종 감독 응원

쾌유 비는 티셔츠 입고 기념촬영

구자철 선제골 넣었지만 무승부

슈틸리케, 신인 이재성 등 실험

지난달 8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우니온 베를린과 보훔의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경기. 전반 8분경 볼을 잡은 홈팀 우니온 베를린 선수들이 갑자기 경기를 멈추고 유니폼 상의를 벗었다. 숫자 7이 새겨진 티셔츠 차림으로 도열한 그들은 독일어로 ‘끝까지 버텨 베니!(Eisern bleiben Benny!)’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 보였다.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동료 미드필더 벤야민 쾰러(35)를 위해 그의 등번호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격려하는 세리머니였다.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쾰러는 동료들의 깜짝 이벤트에 감동받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우니온 구단은 오는 6월 끝나는 쾰러와의 계약기간을 다음 시즌까지 1년 연장하며 쾰러의 빠른 복귀를 기원했다.

한국 축구대표팀도 27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A매치 평가전에 앞서 의미 있는 행사를 가졌다.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이광종(51) 전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을 응원하는 세리머니였다. 경기 시작에 앞서 두 나라 대표선수들은 나란히 서서 전광판에 비친 이 전 감독의 모습을 바라보며 박수를 보냈다. 축구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가 ‘이광종’을 연호하는 가운데 관중들도 힘찬 박수를 보냈다. 이 감독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28년만의 금메달을 안긴 뒤 리우올림픽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지난 1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사임했다. 감독 시절 한·일전에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다해서 별명이 ‘축구계의 이순신’이다.

축구대표팀은 이날 이 감독의 쾌유를 비는 티셔츠도 입고 나왔다. 선발 출전 선수 11명 전원이 경기 시작전 이 감독 사진을 새겨넣은 티셔츠를 입고 기념촬영을 했다.가슴엔 ‘우리에게 돌아오라(Come back to us)’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이 아이디어를 냈다. “유럽에서는 이런 이벤트가 종종 열린다”고 설명한 슈틸리케 감독은 “이광종 감독의 쾌유를 비는 뜻깊은 행사인 만큼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의 회복 속도는 빠른 편이다. 1차 항암 치료를 마치고 최근 2차 치료를 시작한 이 감독은 우즈베크전을 병원에서 TV로 지켜봤다. 병원 관계자는 “치료 경과가 좋다”면서 “조만간 골수 이식 수술을 잘 마치면 완치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이날 경기장에서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우즈베키스탄과 1-1로 비겼다. 한국은 전반 15분 코너킥 찬스에서 손흥민(23·레버쿠젠)이 올려준 볼을 구자철(26·마인츠)이 머리로 받아 넣어 선제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반 31분 상대 미드필더 쿠지보에프(29·마샬)에게 어이없이 동점골을 내줬다. 공격수 이정협(24·상주)이 머리에 피를 흘리는 부상을 당해 그라운드 밖으로 실려나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우왕좌왕하다 골을 내줬다.

슈틸리케 감독은 “무승부라는 결과에 만족할 수 없다”면서도 “새로 합류한 선수들과 오랜만에 복귀한 선수들에게 고르게 기회를 줬다. 신인 이재성을 비롯해 여러 선수들의 가능성을 봤고, 선수층이 더욱 두꺼워졌다.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을 앞두고 실험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수단에서 (세리머니 관련)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적극 찬성했다. 오늘 경기에 앞서 선수들과 많은 팬들이 이광종 감독의 쾌유를 빌었는데 그가 곧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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