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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18만원짜리 '카트 도난'에 골머리 앓는 대형마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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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강북의 한 오피스텔 1층 로비. 로비 한쪽엔 노란색 쇼핑 카트 20여대가 비치돼 있다. 카트엔 대형마트 로고가 선명하다. 입주민들이 오피스텔에서 500m쯤 떨어진 대형마트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두 손으로 들기 무거운 짐들을 카트에 실어 담아온 뒤 되돌려주지 않다보니 하나 둘 쌓였다. 오피스텔은 이를 모아 주민 편의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재활용 쓰레기나 이삿짐, 부피가 큰 택배 물건을 집까지 옮길 때 빌려주는 식이다. 주민 김모(32)씨는 “물건을 옮기고 나면 경비실에 바로 반납하는 시스템”이라며 “카트는 이젠 필수품”이라고 했다. 이곳 뿐만이 아니다. 대형마트와 가까운 아파트와 주택가, 심지어 대학가에도 쇼핑객들이 슬쩍 가져온 카트들이 수두룩하다. 한번 가져온 카트는 대부분 주민들이나 학생들의 ‘공유 재산’으로 쓰인다.
조선일보

서울 강북의 한 오피스텔 앞에 인근 대형마트에서 가져온 카트들이 비치돼 있다.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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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도심의 대형마트들은 늘어나는 ‘카트 도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명백한 절도에 해당하지만, 마트들은 고심만 할 뿐 속수무책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피해 금액이 수천만원에 달해도 카트를 가져가는 쇼핑객들을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고, 문제를 제기했다간 매장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주택 밀집 지역에 위치한 매장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마트 서울 가양점·목동점·천호점·은평점 등에서는 매장별로 매년 100대가 넘는 쇼핑 카트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각 매장 총무과 직원들이 업무 도중 짬을 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인근 아파트와 오피스텔 단지 일대를 돌며 카트를 수거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신형 쇼핑 카트 한 대 가격은 18만원. 매장마다 매년 2000만원에 가까운 손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한 마트 직원은 “어쩌다 대량 도난 사례를 찾아내도 ‘돌려주시라’며 정중히 요청하고 재발 방지를 부탁할 뿐, 고객들이 무서워 법적 책임 같은 얘기는 애초에 꺼낼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서는 일부 고객들이 물건을 담은 카트를 통째로 자가용에 실어가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그간 쇼핑 카트 도난 문제로 몸살을 앓아온 마트들은 매장 주변에 도난 방지용 시설물을 설치하는 방안을 비롯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검토해왔다. 하지만 설치·예산 문제, 고객들이 불만을 제기할지 모른다는 우려 등이 발목을 잡았다. 카트를 사용할 때 넣는 동전 금액을 100원에서 500원으로 올리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고객들이 반발하고 오히려 도난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와 포기했다고 한다. 마트들은 “아무리 고민해봐도 대책이 없다”며 지금도 각 층마다 ‘카트를 가져가지 말아달라’는 안내문만 붙여두고 있다.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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