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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월드리포트] 부러진 다리 끌고 26시간 기어온 칠순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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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상황에 부딪히면 그 사람의 밑천이 드러납니다. 사고방식, 성격, 의지력, 정신력 등을 본 모습 그대로 내보입니다. 무엇보다 내공의 깊이가 확인됩니다. 그래서 저는 부디 극한 상황을 맞지 않기를 항상 기도합니다. 내 스스로의 천박함과 일천한 내공에 놀라고 실망할까봐서요. 거꾸로 극한 상황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한 사람들을 보면 존경하게 됩니다. 그들의 초인적인 인내심에, 강철 정신력에, 꺾이지 않는 낙천성에 감탄합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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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아론 랠스턴이라는 청년입니다. 2003년 4월 그는 아무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 혼자서 유타주의 블루존 협곡 트래킹에 나섰습니다. 워낙 자주 간 곳인데다, 암벽 등반과 모험적인 스포츠에 정통한 아론인지라 소풍 가듯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휴대용 캠코더와 등산용 밧줄, 작은 칼, 생수 5백 밀리리터가 가져간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 그만 무너져 내린 바위에 팔이 끼이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됐습니다. 무려 5일 동안 팔을 빼내 탈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도와 달라 목청껏 외치고, 칼로 팔이 끼인 돌 주변을 깎아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남기는 작별인사를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127시간이 흘러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아론은 결단을 내립니다. 끼여 있던 팔을 스스로 절단합니다.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고 무딘 칼로 팔을 끊어낸 그는 마침내 탈출에 성공합니다.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나중에 세계적 감독 대니 보일이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영화 ‘127시간’은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를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수많은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냈습니다.

중국에서도 얼마 전 극한 상황을 이겨낸 칠순 노인이 화제가 됐습니다. 저장성 징닝현 샤와진의 한 산골 마을에 살던 75세 천더둥 할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천 노인이 겪은 26시간의 사투를 따라가 보죠.

천 노인은 지난 1일 오전 나무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산길로 2.5킬로미터나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가파른 산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장작을 마련한 천 노인은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습니다. 오전 한동안 흩뿌렸던 비가 문제였습니다. 자갈길이라 미끄러웠습니다. 천 노인은 그만 얼마 가지 못하고 자빠지면서 길 옆 비탈로 굴렀습니다. 그대로 기절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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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노인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사위가 캄캄해진 뒤였습니다. 왼쪽 다리에 참기 어려운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벌겋게 부어오른 모습이 부러졌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천 노인은 '살려 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한밤의 깊은 산 속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천 노인은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스로 산길까지 올라왔지만 몸을 일으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천 노인은 포복을 하듯 자갈투성이 산길을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산길은 진창으로 변했습니다. 기온은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졌습니다. 비에 흠뻑 젖은 천 노인의 몸은 싸늘하게 얼었습니다. 천 노인은 그저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계속 기어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전진했습니다. 두 팔과 한 다리만으로 몸을 밀고 나갔습니다. 한 번 기고, 한 번 쉬고. 다만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천 노인이 만 하루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난 것 아니야?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 없었기에 찾아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이웃 궁씨 등이 마을 어귀까지 나가 천 노인을 기다렸습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 길 저쪽에 한 사람이 힘겹게 기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천 노인이었습니다. 무려 26시간 만에 마을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웃들이 뛰어가 천 노인을 부축했습니다. 온 몸은 진흙으로 덮였습니다. 왼쪽 다리는 얼마나 퉁퉁 부었던지 거의 몸통만 했습니다. 온몸으로 기어 오느라 전신이 상처투성이였습니다. 26시간 넘게 먹지 못해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주민들은 급히 천 노인을 근처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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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검사 결과 천 노인의 왼쪽 다리는 골절됐습니다. 수십 시간을 포복하느라 관절과 인대 등도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곳곳에 크고 작은 찰과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70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현지 기자가 찾아갔을 때 천 노인은 상태가 많이 안정돼 2차 수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처음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는 한참동안 내가 왜 여기 와있지 의아했다니까요. 한동안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기어올 때 오직 한 가지 생각만 하려 했습니다. '나는 돌아갈 수 있다. 항상 다니던 길이니 기어서라도 가면 된다.' 26시간이나 지났는지도 몰랐어요."

사회는 점점 차가워집니다. 환경은 더욱 험악해집니다. 반면 사람들의 의지력은 갈수록 약해집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자살과 각종 정신병, 분노 범죄가 급증합니다. 하지만 천 노인은 70이 넘은 몸으로도 해냈습니다. '해낼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버텨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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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욱 기자 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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